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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법조소식

일본의 ‘고령화 쓰나미’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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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면 여길까.’ 일본인들에게 부러운 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세계 최장수국답게 도시 곳곳에 참 노인들이 많고, 그들은 꽤나 행복하게 노후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섬나라 노인들은 자국의 탄탄한 사회 보장 제도와 복지시설 덕분에 은퇴 후 연금을 받으며 쇼핑센터, 문화 여가시설 등지에서 젊은 세대 못지않은 세련된 말년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며 ‘고령화 쓰나미(aging tsunami)’라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며 초고령 사회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발견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노인 빈곤’ 이다. 노인 빈곤 문제는 2000년 대 중반 이후 주요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는데, 65세 이상 인구가 국민 넷 중 한 명(일본 27.3%, 한국 13.8%)에 달할 만큼 고령화가 급진전되며 여기에 저출산 문제가 겹치며 나타난 현상이다. ‘하류노인(下流老人, 2015년 출판된 베스트셀러 「하류 노인」 에서 탄생한 말로 소득· 저축·주위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노인을 뜻함)’이라는 신조어는 2015 년 유행어 대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이제 일본 뉴스에서 “독거노인이 고독사하여 몇 달 뒤 발견되었다” 는 소식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오죽하면 지방자치단체와 자원봉사자가 집 앞에 놓인 우편물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를 시행하여 점차 보편화 되었으니 말이다.

700만 노인들이 가난한 나라
일본 내 약 3,300만 명의 노인들 중 약 700만 명(22%)이 ‘노후 빈곤’ 상태에 있다고 조사되었다. 100세 시대가 열리며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파산상태에 이른 고령자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후생 노동성의 ‘국민 생활 기초 조사’ 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가구에 생활이 힘든지 물어본 결과 ‘매우 힘들다’ 또는 ‘다소 어렵다’고 대답한 비율이 1995년 37.8%에서 1999년 46.1%, 2004년 50.%로 꾸준히 상승하여 2014년에는 58.8%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일본의 ‘노후 빈곤’ 문제가 시작된 데는 우선 노후를 가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데, 비정규직의 증가 및 핵가족화 등으로 자녀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노후 생활을 지원받을 안전망이 붕괴된 점, 이러한 경향과 더불어 사회 보장 제도와 사회 복지 제도의 미비가 원인일 것이다.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어선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이지만 국민의 노후복지 체계는 의외로 완벽하지 않다. 고령자의 약 70%가 생계를 이어가는 주요 수입원의 핵심 수단은 ‘연금’ 이다. 문제는 연금 수령자의 절반 가까이가 월 10만 엔(2018. 2. 5. 자 환율기준 약 99만 천원)이 안 되는 돈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1인 가구의 경우 연 122만 엔, 2인 가구의 경우 170만 엔이 ‘빈곤’ 가구의 기준으로, 그 이하 수준으로 생활한다면 하루빨리 일용직 일자리라도 알아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적연금’이 한국보다 오래 전에 도입됐지만 일본 노인들의 평균 수명이 긴 탓에 그 수령액이 긴 노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기업에 장기간 근무했다면 매달 20만 엔 정도를 받을 수 있지만, 연봉이 많지 않았다면 한달에 5만 ~ 6만엔 수준밖에 안 된다. 결국 일본 사회 역시 노후 준비는 각자도생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

노인 범죄와 고립
이러한 노인 빈곤 문제와 필연적으로 등장한 것이 노인 범죄의 증가이다. “굶어죽느니 차라리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서 사는게 낫겟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노인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감옥에는 동료들도 있으니 덜 외롭고, 삼시세끼 꼬박 밥도 나오니 최소한 ‘고독사’는 면하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사실 일본의 노인 범죄의 증가는 수 년 전부터 지적된 현상이다. 2012년 ‘범죄 백서’의 조사에 의하면, 형사 범죄 검거 인원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이전 5년 간에 비하여 약 5.2배 증가하여 왔다고 한다. 해당 보고서는 작년, 교도소에 수감된 노인은 2,498명으로(2016년 기준) 대부분 절도 등 경범죄로 수감되었으나, 10년 전의 4배 수준으로 증가하였다고 밝히며 노인의 재범률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수감자 전체의 30%에 육박한다고 보도하였다.

무엇이 노인들로 하여금 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한 것일까.

 지난해 이에 대하여 ‘제일재경망’은 “감옥의 대우가 너무 좋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는데(2017. 11. 21. 제일재경망), 이렇듯 노인 빈곤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 것이다.

정년을 맞아 사회와의 연결이 단절된 데서 오는 사회적 고립, 저출산 핵가족화 사회에서 가정에서의 고립, 개인주의에서 비롯한 이웃과 지역 사회로부터의 고립 등이 노인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그린 것은 아닐까. 이대로 저출산·고령화가 계속된다면, 1인 노인 가구의 비중은 점차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령자의 고립화 속도 역시 더욱 빨라질 것이다.

노인들이 고립화 되며 범죄율이 높아지는 동시에 범죄 피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기 피해를 당한 노인들 중 다수는 “가해자들이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친절히 상담에 응해 주었다”고 느끼고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노인들이 평소 사회에서 고립되고 외로운 상황에 놓여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 만들기
어느덧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 역시 앞으로 노인 빈곤 및 범죄 증가에 대한 대비책을 구축해야 함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거주문제’, 즉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2016년 4월, 동경과 지방도시의 상생모델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 발표된 적이 있다. 동경 스기나미구(杉並区)에서 ‘고령자 돌봄문제’ 해결을 위해 관광지로 잘 알려진 이즈반도(伊豆半島)의 최남단 마을과 협력하여 특별양로원을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역시 서구 선진국과 같이 AIP(Aging In Place, 친근한 환경에서 안정적이고 자립적으로 살고자 하는 노후 트렌드) 또는 장기보호시설(Long term care Facility) 입주에 대하여 적극적인 태도임을 알 수 있다. 고령자가 자신의 집에 편의를 위해 핸들을 설치하고 문턱을 없애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개·보수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일반화되었다. 이는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요양 시설 유치보다 더 경제적이다.

우리 정부 역시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2008년 시행)하면서 ‘AIP’ 차원에서 재가요양을 권장하고, 거주지역내 시설 운영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단독 주택에서 거주하는 타국의 경우와 다르게 경제활동 및 자녀 교육 등을 위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이동해 온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AIP를 실천하라며 귀향을 등 떠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거 지역이나 자연환경보다는, 정든 가족 및 이웃과의 관계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고령자’ 하면 나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제도의 정비와 함께 ‘연령 차별주의(agism, 노인에 대한 차별을 일컬음)’를 지양하는 문화의 조성이 요구된다. 자립하는 노인이 많을수록 자식과 정부의 부담도 줄어들며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최유진 변호사(법무법인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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