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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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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의 오빠가 세 여동생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박또박 적은 소장에는 뾰족한 미움이, 법정에 나온 그의 눈에는 매서운 분노가 배어 있었고, 그의 말은 한없이 날카로웠다. 어렸을 때부터 사고를 치던 그는 부모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겨 재산을 남겨주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부모 사망 후 여동생들을 상대로 줄 소송을 벌이며 미움을 키워왔다. 결국 그는 온 종일의 시간과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전부 소송에 쏟아 부었고, 견디지 못한 아내와 자식들은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미움은 여전했다.

오빠의 모진 공격에 동생들은 그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몇 해 전 4남매가 계곡에 놀러가 사이좋게 웃으며 찍은 사진. 그들은 원래 그런 사이였다.

이 오빠뿐이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요즘 정서도 이해와 포용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인 것 같다. 인터넷과 언론에 넘쳐나는 악의적 표현, 할 수 있는 온갖 모진 말을 다 쏟아내는 잔인함, 조그만 일도 참지 못하는 분노, 쉽게 나타나는 폭력성.

살면서 미운 사람이 왜 없겠나. 그렇지만 미움은 깊이도 시간도 적당히 하여, 끝낼 때는 끝낼 줄 알아야 한다. 작년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폭행을 당한 여중생이 얼마 전 재판에서 가해학생의 사과를 받고, 그 친구도 마음고생 많이 했을 거라 생각하니까 미안하고 사과해 준 것이 고마웠다고 했다.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겪고서도, 미움을 딛고 이해하려는 마음까지 보여줘 놀라웠다.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던 그 오빠의 증오가 섬뜩하여 한참 걱정하며 기록을 보는데, 반가운 서면이 있다. 소취하서.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확인은 못했지만, 동생들이 오빠에게 한 지난 변론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이제 우리밖에 없는데 꼭 이래야 되겠나. 혼자 무슨 재미로 살라고 그라노…."

한 농부작가의 산문집 제목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가 떠오른다. 유난히 찬 겨울을 보내며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가 참 소중했다. 소소한 사는 얘기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추위를 견뎌보려면, 역시 미움보다는 이해와 용서다.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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