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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어둠을 물리치는 새해 태양아 힘차게 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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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어떤 사실관계를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을 전해 듣거나, 시간이 지나서 변질되거나 퇴색된 자료들을 종합하여 원·피고나 검사가 주장하는 가설 중 어느 것이 더 맞는지 손을 들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이다. 사건을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한 당사자 본인조차도 종종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여 인식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인정되는 사실관계가 실제 사실관계와 다르거나 부정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재판이란 천막을 가리고 천막 뒤에 숨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일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천막이 물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천막 뒤에 코뿔소가 숨어 있는데도 다수의 사람들은 코 부분을 간과한 채 그 덩치와 모양을 보고 하마라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는 코 부분만 보고 코끼리라고 주장하는 경우 판사는 하마나 코끼리라는 판단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하마라고 주장을 하던 사람이 코 부분을 지적한 소수의견을 반영하여 코뿔소라는 주장을 할 때 비로소 판사는 코뿔소라는 주장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있게 된다. 최근 들어 천막 앞에서 직접 물건을 관찰한 당사자들도 천막 뒤의 물건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면서 천막 앞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토대로 코뿔소의 코를 간과하지 말라는 긍정적인 비판 대신 자신의 판단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방이나 그런 생각을 지지한 판사까지도 틀렸다거나 아예 바보라고까지 심하게 비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새해에는 부디 진실을 가리고 있는 얇은 천막은 물론 그 주변의 어둠까지도 물리칠 수 있는 강렬한 진실의 빛살을 비추는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재판 당사자들 누구나(특히 재판장)가 다 천막 뒤의 동물이 코뿔소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어서, 판사들이 쓸데없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그런 일들이 사라지는 희망찬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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