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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사법신뢰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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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를 포함한 법조인의 고질적인 직업병이 ‘의심병’이라고 하면 공감하실 분이 상당하리라. 판사는 당사자나 증인의 말에 의심부터 하고 진위 판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명확한 물증이 있는 사건보다는 관련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사건이 많다보니 그 진위 판단이 곧 재판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일단 의심부터 하여 가족들에게조차 핀잔을 듣기 일쑤다.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불리한 판결을 받은 측은 혹시 판사가 부적절한 이유로 그런 판단을 했다는 의심부터 하곤 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에서도 그런 경우를 종종 본다. 같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시선을 감추지 않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이니 일반인들은 오죽하랴 싶다.

판사는 왜 사법을 신뢰하지 못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판사 역시 왜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를 한, 신뢰해야 할 사법절차를 충실히 지킨 증인의 증언을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가?

인간이 오랜 세월을 거쳐 가다듬어 온 재판제도는 아쉽지만 완벽하지 못하다. 과거에는 신을 대신하여 재판한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보려고 하였다지만 당연하게도 실패했으리. 하지만 인간사회는 사회유지를 위해 어찌됐든 분쟁을 종결해야 할 재판제도가 필수적이다. 근세 들어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가장 오류가 적고 승복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왔고, 현재 우리 재판제도 역시 그 과정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당사자에게 신처럼 완벽한 재판은 아니더라도 시스템 자체를 신뢰해야 하고 적어도 존중해 달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합리적인 사법절차에 따라 선서한 증인을 시스템적으로 믿고 진실이 아닐지라도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 얼마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위증·무고 사범을 엄벌하는 이유는 사법절차의 선의를 악의적으로 훼손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법절차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훼손은?

결국 완벽하지 못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는, 우리가 증인에게 선의를 기대하는 것처럼 운용자들의 선의가 오롯하게 담보되었다는 확신을 당사자에게 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 같으니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김종복 부장판사 (목포지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