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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

사법개혁의 핵심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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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할 줄 아는 사법부를 보고 싶다 -

A. 머리말
우리의 400여년 전 역사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598년, 6년간의 임진왜란이 끝난 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내분 속에서 논공행상이 이루어졌고, 슬프게도 나라를 구하려고 온 몸을 던진 분들보다는 몸 사리고 엎드려있던 사람들이 득세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바다건너 일본에서는 정탐꾼을 밀파하여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갔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했으면 틀림없이 복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움직임이나 낌새가 없음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B. 또다시 개혁의 요구
지난 1년 동안 급속도로 세상이 바뀌고 사법부에도 변화가 닥쳤습니다.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새 대통령은 사법부의 특성상 파격적인 대법원장을 임명함에 그쳤고, 나머지 사법개혁의 과제는 그에게 맡기는 모양새입니다.


새 대법원장은 취임 후 개혁의 과제로서 ①전관예우근절, ②재판중심사법행정, ③법관인사제도개편, ④재판제도개선을 약속하면서, 그동안 문제되었던 소위 법관에 대한 ‘블랙리스트(black list)’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4대 개혁과제 및 당면한 현안문제의 해결은 당연히 해야 할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법개혁의 핵심은 이를 뛰어넘는 보다 더 근본적인 데에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C. 지난날의 개혁에 대한 반성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과거 반세기동안 정치적변화기에 맞추어 4차례(1971년, 1988년, 1993년, 2003년)의 사법파동이 있었고, 그 때마다 나름의 변화가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러한 변화들은 일시적ㆍ표피적인 것이었을 뿐, 보다 근본적인 체질개선에는 미치지 못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는, 개혁을 주장하면서 추상적인 이론만을 내세웠을 뿐,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실천방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학적인 원론에 치중한 나머지 구호를 실행에 옮길 정책과 추진력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개혁의 동력이 사그라지면 슬그머니 일상의 타성으로 돌아와 버리곤 하였습니다. 


둘째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양순한 기질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관들은 정치권력 또는 여론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감지하게 되면 그것이 자기의 정의관념에 반하더라도 열심히 해결책이나 타협점을 생각해내는 슬픈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눈물 젖은 평화주의자’입니다. 너무 착합니다. 투쟁을 두려워합니다. 외부공격에 취약하고, 정신적 자위행위로 내부개선에 치중합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재판권만은 빼앗길 염려가 없다고 자위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존감을 지키기 위하여 “투쟁이나 싸움은 점잖지 못하다”고 자위합니다. 하지만 ‘비겁과 중용은 종이한장 차이’입니다. ‘자기수양은 미덕인지 비겁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더 더욱이나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고 법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주범인 사법인접세력들은 ‘극단적으로’, ‘반(反)헌법적인 방법으로’ 헌법에 보장된 사법권을 유린해 왔음은 역사가 이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그동안 용기ㆍ패기ㆍ배짱ㆍguts가 없었습니다.

D. 사법개혁논의의 핵심
이제 사법개혁의 논의가 왜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무릇 어느 조직이나 기관의 개혁이 논의되는 경우 그 근본이유는 2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강력하여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함으로써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입니다. 과거의 정보기관, 군부세력 또는 검찰권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조직이 지나치게 위축되어 당연히 행사했어야 할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함으로써 비난받는 경우입니다. 과거 우리의 사법부가 그러한 모습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과거의 사법부를 본다면 2가지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해자로서의 사법부’입니다. 사법부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국민에 대한 가해자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로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시절에 과거사반성이 화두로 떠올랐고, 그 귀결로 당시의 대법원장이 2차례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사법부가 국민의 권익ㆍ인권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고 사죄를 하였습니다. 이로써 미흡하나마 가해자로서의 사법부는 그 나름대로 최소한의 반성은 하였고 그 일은 일단 정리되었다고 여겨집니다.


둘째는 ‘피해자로서의 사법부’입니다. 즉 과거 엄혹했던 시절에 사법부 역시 정치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온갖 불이익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사법개혁의 초점과 방향은 사법부가 ‘법과 정의의 선언’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독려함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앞으로 더욱 잘 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할 때 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법권독립의 핵심인 ‘법관인사의 독립’을 해친 역사적 사례들을 찾아 그 ‘경위’와 ‘주모자’를 밝혀두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처벌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고와 다짐을 주고자 함입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대표적인 사례 4건 정도만 골라 조사하여도 충분하다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①국가배상법위헌판결로 물러난 9명의 대법원 판사들, ②김재규 내란음모사건에서  정곡을 찌르는 소수의견을 내고 물러난 5명의 대법원판사들, ③긴급조치9호 위반사건에 무죄판결을 하고 물러난 이영구 판사, ④검찰의 영장기각을 이유로 뒷조사를 당하고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던 이범렬 판사의 사례 입니다.


둘째는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나 피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하거나 또는 증거를 조작하여 무리하게 유죄판결을 받도록 한 사례들과 그 장본인들을 색출하는 작업입니다. 이 경우에도 역시, 대표적인 사례 4건 정도만 추적해도 충분히 경고적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①박종철 군에 대한 가혹행위를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②김근태 피고인에 대한 가혹행위 사건, ③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④김재규 내란음모사건에서 소수의견을 쓴 양병호 대법관에 대한 가혹행위 사건 등 입니다.


셋째는 ‘사법행정 또는 입법과정’에서의 부당한 영향력행사를 통하여 사법권을 제약하고 통제하였던 대표적인 사례 4건 정도만을 시범적으로 거론하여도 될 듯 합니다.


예를 들어 ①국가배상법 중 대법원의 위헌판결을 받은 조항(국가의 배상책임제한 조항)을 헌법규정으로 삽입하게끔 한 장본인 ②법관에 대한 영장청구 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악의적ㆍ의도적인 문구를 넣게 한 장본인 ③형소법상 검사의 구형이 10년 이상이면, 무죄판결이 있어서도 석방되지 못하게 한 독소조항이 삽입된 경위와 장본인, ④과거 사회보호법상 사회보호처분에 법관의 판단이 개입되지 못하게 한 규정의 삽입경위와 장본인 등 입니다.


넷째는 헌법상 3권 분립의 커다란 한 축인 ‘사법부 및 그 구성원인 법관의 권위와 위상을 실추’시키는 2가지 ‘외형적 요인을 타파’시키는 것입니다. 즉 ①검찰청사를 법원청사와 병렬적ㆍ대칭적으로 배치하는 법치후진적인 조치와 ②검사가 마치 법관과 대등한 것처럼 오해하게 하는 교묘한 여러 고리를 과감히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E. 사법개혁의 ‘구체적 방법론’
앞에서 예로 든 모두 14가지의 사법개혁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은 어느 것이나 실천의지만 투철하다면 자체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더욱이 파격적인 대법원장이 임명된 현시점에서 사법개혁의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큰 동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체적 실천방법과 주체도, 기존의 조직(예를들면 사법정책연구원 등의 조직과 인력)을 활용하여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과제를 수행해 나감에 있어서 특별히 유념해야 할 2가지만을 지적해두고 싶습니다.


하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개인이 우수한 조직의 집단적 우둔함’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새 대법원장의 개혁과제 4가지는 사법부가 영원히 안고가야 할,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입니다. 이러한 일에 너무 매몰되어서는 핵심개혁을 제대로 시기에 맞게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둘째는, 개혁의 동기와 동력을 오랫동안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선구적 역할을 해 오셨던 선배 법관들의 업적과 용기를 발굴하여 현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엄혹했던 시절에 긴급조치위반사건에서 시대를 앞선 용기로 무죄판결을 하셨던 이영구 부장판사는 금년 11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좀 더 일찍 후배들이 그 분을 칭송해 드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F. 맺는 말
진정으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법개혁 관련하여 가장 우려스러운 상황전개는 다음의 2가지입니다.
하나는 우수한 두뇌집단의 치명적 약점인 ‘세부사항에 매몰’되어 큰 틀을 놓치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법개혁이 왜 요구되고 있는지 그 ‘핵심’을 놓치는 일입니다. 개혁의 근본이유는 사법부가 그동안 너무 약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세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외부’로 향한 투쟁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내부’에서 서로 다투거나 잘잘못을 가리는 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임진왜란 이후의 우리나라 내부상황을 이야기 했던 이유입니다. ‘방안퉁수’라는 단어가 저의 머리를 맴도는 이유입니다. 


마무리 입니다.
 바다에 ‘태풍’과 ‘거센 파도’가 없다면 바다가 아닌 것처럼,
 세상도 그리고 우리 인생도, 때로는 ‘분노’와 ‘비극’의 힘으로 나아갑니다.
 지금, 어떤 ‘비극’이 당신을 움직이고 있습니까?
 또,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분노’는 무엇입니까?

 


 

양삼승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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