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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잔인한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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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원고에게 부동산을 인도하라." 판결을 선고하자, 그 피고는 이 추운 겨울에 어디로 가라는 거냐고 훌쩍인다. 월세를 몇 개월째 연체해서 임대차계약이 해지되었기에 법률상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임대인은 자기도 월세 받아 먹고 살아서 이제 더는 기다려줄 수 없다고 하니, 바람도 시린 겨울날 당장 집을 비우라는 판결을 선고하게 되었다.

다른 사건. 원고는 사랑하는 아들을 건설현장 추락사고로 잃는 끔찍한 일을 겪고, 현장 관리를 소홀히 한 건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 왔더니, 건설사의 잘못보다 아들이 현장에서 안전주의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아들 잘못도 있다는 것이 더 크게 다투어진다. 주변 동료들의 증언, 아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과 영상, 그 아버지는 차마 다 듣고 보지 못해 눈을 감는다. 툭, 둘 곳 없는 눈물이 떨어진다.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잔인한 법정이다.

언젠가 재판 소통을 주제로 한 포럼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한 미국변호사가 "법원은 교회가 아니다"라고 했다. 아픔과 상처에 대한 치유는 교회, 병원 혹은 가정의 몫이고, 법원이 재판에서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법조인다운 말이고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판과정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아픔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숙제는 여전히 남았다.

솔직히 내 가족의 아픔도 잘 살피거나 위로하지 못하는 마음 좁은 사람인데, 재판으로 몇 번 만난 사람을 보듬는 것은 너무 어려운 숙제다. 거기다가 한 쪽의 마음이 아니라 양 쪽의 마음을 공평하게 살펴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고 싶다. 그래도 내 재판이 상처로 남지 않기를 판사들은 늘 고민하고 걱정하며, 부족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려한다.

필요한 절차와 타당한 결론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법정에서 눈물짓는 그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는 방법, 뭐가 있을까?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