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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사기범죄의 피해자들을 보며 느끼는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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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1년차 변호사 시절 어느 선배 변호사님으로부터 “일을 하면서 의뢰인의 여러 사정에 지나치게 이입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안좋으니 때로는 적절하게 거리를 두어라”라는 조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타당한 조언이다. 변호사는 1건의 사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에 의뢰인 개개인의 사정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정신건강을 해쳐 업무의 효율도 떨어질 수 있고, 냉철한 법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결정의 순간에 감정에 따른 악수(惡手)를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필자는 특히 사기범죄의 피해자들과 상담을 하고 법률자문이나 고소대리 업무를 할 때는 유독 더 격앙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사기범죄를 접하면서 느낀 소회들을 간략히 곱씹어 보고자 한다.

1. 변호사를 찾아올 정도의 사기는 한 개인을 넘어 가정을 파괴한다.

일반인들은 피의자나 피고인 신분이 되면 그래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일단은 본인이 합의 등을 하려고 애를 쓰다가 변호사를 뒤늦게 찾아오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다. 사기가 특히 그렇다. 일단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이미 금전적 피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비용을 써서 변호사의 상담을 받는 것에 몸을 사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 문제는 그렇다보니 심각성을 느끼고 변호사를 찾아올 때쯤에는 사기액이 막대한 경우가 많다. 필자는 최근에도 40억원이 넘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와 상담을 했었는데, 누적된 사기피해로 부부는 이혼을 했고 동생은 홧병이 생겨 투병생활을 하는 등 집안 전체가 파탄이 난 상황이었다.

효율적인 상담을 위해서라면 형법 제347조에 따라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는가’라는 구성요건을 따져보고 관련증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눈물을 참아가며 스스로를 한탄하는 의뢰인의 말을 듣다보면 필자도 사람인지라 연민과 어리석음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말을 끊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기고문을 쓰는 지금도 그 의뢰인의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2. 사기범죄의 가해자는 오히려 갑(甲) 입장에서 피해자를 기망하곤 한다.

사기범죄의 가해자들은 돈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기범죄 증거들을 보면 “이번 계약만 해결되면 5억이 들어오니 일단 급전 5천만원만 보내줘”와 같은 메시지들이 빈번하다. 이처럼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궁박함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곤 하는데, 문제는 이미 경제적 곤궁에 처한 피해자들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최근에 상담한 여러명의 피해자들이 예외없이 신용불량에 상태였다. 이미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변제의 희망을 악용해 다시 돈을 뜯어내는 가해자들. 야근을 하며 이들이 보낸 장기간의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가 따로 없다. 고소장을 작성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지만 때로는 욕이 나올 정도로. 물론 이런 분노 때문에 퇴근을 하지 않고 새벽까지 고소장을 작성하고 증거를 검토하는 원동력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3. 정작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기범죄의 피해자는 부족한 자력 때문에 턱없는 금액에 합의에 응하거나 구제를 포기하곤 한다.

사기범죄의 피해자들은 하루하루가 생존의 싸움이다. 특히 집안에 환자가 있는 피해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나름의 배려를 해드리고 싶지만 고소나 기타 법적 조력을 위해서라면 일정 수준의 변호사 비용이 발생하는데 무턱대고 비용을 깎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상황에서 가족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피해를 당한 금액보다 현저히 약소한 금액에 합의라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수차례 보았다. 그들이라고 화가 나지 않겠는가? 가족을 위해 그 상황에서도 합의를 위해 애태우는 피해자들을 보며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하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4. 사기범죄의 피해자들의 자책하는 모습들을 보며

가끔은 상담을 하면서 피해자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할 때가 있다. “왜 그런 사람 말을 듣고 그렇게 많은 돈을 주신 거에요?” 필자도 오죽하면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데 그 순간에 아무 말도 못하고 “예. 저도 알아요. 누굴 탓하겠어요”라고 감정을 억누르고 고개를 푹 숙인 의뢰인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의뢰인들을 보면서 ‘내 기필코 이들이 구제를 받도록 도와주겠다’고 전의를 불태워 보지만 그들을 다독이고 배웅을 한 이후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다 보면 필자 역시 짙은 감정의 여운을 느낀다. 극도로 곤궁한 상황에서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고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야근을 할 때의 책임감은 정말 무거운 것 같다.

5. 마치며

사기범죄의 피해자들을 위해서 실효적인 금전적 구제조치가 이루어지도록 여러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수사기관의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사기범죄로 기소를 하는 것자체도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수사인력을 증원해서라도 은닉된 재산의 향방을 밝히는 후속 수사도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추후 민사소송에서 승소를 하더라도 은닉된 재산을 찾지 못한다면 그 판결문은 공허한 서류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은닉된 재산이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이상 피해자에 대한 구제는 불완전하다는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또한 사기범죄를 저지르고 재산을 은닉한 후 피해배상 없이 그저 ‘몸으로 버티려는’ 자들에게 보다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재산범죄에 대한 약한 처벌은 ‘크게 사기를 하고 몇년만 버티면 훨씬 남는 장사다’라는 그릇된 범행동기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는 기고문 주제로 독일여행기를 쓰려고 했는데 근래 사기범죄 피해자들을 조력하다 보니 다소 여운이 남아 무거운 주제로 글을 썼다. 이 시간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을 수많은 사기범죄의 피해자들이 부디 피해를 배상받고 다시 원래의 따뜻했던 공간으로 돌아가기를 거듭 기원해 본다.

 

김진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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