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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 : 엄중한 처벌과 낮은 무죄율
일반적으로 일본은 범죄율이 낮은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로는 ① 언어, 문화, 교육 등에 있어 동질성이 잘 유지되고 있고, ② 인종이나 종교마찰도 없으며, ③ 준법정신이 높은 점 등이 들어지고 있다. 일본이 치안이 좋은 나라라는 점은 일본의 논문과 저서에서도 통계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위험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며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일본인의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은 고대부터 엄격한 형벌을 유지해 온 국가라 할 수 있고, 형법 개정도 엄벌화 추세에 있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최근 한국 형사법이 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최근 일본에서 엄벌화가 두드러지는 분야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종래부터 일본의 범죄발생건수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범죄가 절도 다음으로 교통범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한 경우에 무죄율은 우리보다 현저히 낮은 0.1% 정도에 불과해서, <99.9 형사전문변호사(마쓰모토 준 주연)>라는 드라마가 나올 정도이다. 그 이유는 일본 검찰은 명확하게 유죄가 될 사안이 아니면 기소를 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렇게 무죄판결이 매우 적게 나오다 보니 한국 변호사들이 형사사건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주장하고자 할 때에도 일본의 판결례를 참조하기 어렵다.
2. 경찰과 검찰의 구조
우리나라가 중앙집권적인 경찰 구조라면, 일본은 국가경찰과 도도부현 경찰로 이원화된 구조라 할 수 있다. 국가경찰의 행정기관으로서 내각총리대신 소관 하에 국가공안위원회가 있고 다시 그 산하에 경찰청이 있으며, 도도부현 경찰의 행정기관도 도도부현공안위원회가 있고 그 산하에 경찰본부, 경찰서가 있다.
검찰과 경찰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본도 이전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명하복관계의 강력한 검사제도를 도입하였으나, 1946년 미군정의 영향으로 제정된 헌법 하에 바뀐 형사소송법은 검사와 사법경찰의 관계를 상호렵력관계로 규정하고 있다(제192조). 수사의 개시와 종결에 대한 모든 권한을 검사가 가지고 있는 우리와 달리, 일본의 경우 검사는 기본적으로 소추기관이기는 하지만 경찰수사를 보충하는 2차적 보정적 수사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법경찰이나 검사는 모두 각각 독립한 수사기관이며, 양자의 관계는 대응, 협력, 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찰은 1차적 수사권으로서 수사의 개시, 진행에 대한 권한을 가지며, 다만 수사의 종결권은 검사에게 있다. 그래서 극히 경미한 범죄의 미죄처분, 소년사건 중 경찰이 직접 가정재판소에 송치하는 사건 이외에 경찰에서 수사한 사건 전부는 검찰로 송치하는 '전건송치주의'가 채택되어 있다.
3. 대인적 강제처분의 차이
우리의 경우 모든 영장은 검사만이 판사에게 청구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일본 경찰은 법원에 직접 각종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일본 경찰은 체포만 할 수 있고 구류(우리의 구속)는 검찰의 전속 권한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경찰이 구속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우리와 다른 점이다(물론 우리 경찰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순간부터 검사의 통제를 받게 된다).
체포와 관계없이 구속영장 청구가 가능한 우리와 달리, 일본은 피의자를 체포하지 않고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 한다(체포전치주의). 다만, 체포한 후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기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구속기간에 제한이 있지만, 일본은 법원의 구속기간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재판 진행의 기간이 매우 길다. 또 우리와 달리 기소 전의 피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석제도가 없으며, 자백을 해도 보석이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일본에서 한국인이 체포 또는 구속이 될 경우, 한국에서 겪는 형사절차보다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4. 도입론 : 민사 불개입의 원칙
우리의 법률실무에서는 채무불이행이 계속될 경우 민사상 청구와 함께 채무자에 대한 형사상 고소를 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민사상 채무불이행은 형사상 사기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므로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형사처벌이 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서 채권자들이 사기를 이유로 고소를 하게 되면 수사기관은 일단 채무자를 피의자로 소환해서 신문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 채무자들이 채무를 변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민사재판에서의 증거 확보를 위해 고소를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고소의 남발 및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 경향이 매우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와 사법체계가 가장 유사한 일본에서는 현재 경찰이나 검찰, 재판소 등 형사사법제도의 운영주체 내부에 ‘민사불개입 원칙’ 또는 ‘민·형 엄격분리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 우리처럼 채권자의 고소 남용을 유도하는 실무상의 처리관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 일본의 경우 경찰과 검찰은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 경향’을 부추기는 고소·고발을 거부하는 이유로 ‘민사불개입 원칙’을 원용해 왔으며, 민사재판소도 ‘민사소송의 당사자주의 원칙’을 근거로 형사확정기록을 제외한 수사기록의 송부촉탁신청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고소를 해도 경찰이나 검찰이 이를 수리해 주지 않으므로,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변제를 받기 위해 또는 민사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형사절차를 이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현실에서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 경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본의 민사 불개입의 원칙을 우리 형사사법제도에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중혁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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