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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주권으로 인권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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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왕실전범을 제정하여 왕위계승, 종친과 외척의 구별을 분명히 한다. 임금은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과 외척의 정치 관여는 용납하지 않는다.”

1895년 1월 7일 구한말 갑오개혁 당시 고종이 박영효의 권고에 따라 군신들을 거느리고 종묘에 나아가 선포한 홍범 14조의 첫 부분이다.

그러나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한 프랑스 인권선언에 비춰보면 근대헌법으로 보는 건 무리겠다.

사실 헌법(憲法)이라는 말은 동아시아에서 예전에 쓰이던 말이었다. 법(法)과 헌(憲)은 모두 법의 의미로 헌법(憲法)을 일반적인 법(法)의 의미로 썼던 것이다. 헌법이 이런 의미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constitution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에서 1873년 출판된 '프랑스육법' 에서부터라고 한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의 문명개화론자들은 영어의 freedom이나 liberty를 自由(자유)로, right를 權利(권리)로, individual을 個人(개인)으로 번역했다.

sovereign 또는 sovereignty라는 영어 단어 역시 이 무렵 주권(主權)으로 번역됐다. 한국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의 한 논설은 “서양 각국에서 행한 여러 가지 제도의 가장 중요한 요점으로 움직일 수 없는 기초는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와서 시행된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헌법은 1919년 상해에서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이라 할 수 있다. 임시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대한인민(大韓人民) 전체에 있음을 밝히고 대한민국의 입법권은 의정원이, 행정권은 국무원이, 사법권은 법원이 행사한다고 선언한 후에 인민(人民)의 권리와 의무에 관해 헌법 제2장에서 비교적 상세히 규정했다. 요컨대 주권으로 인권을 쓴 것이 헌법인 것이다.

 

김진욱 선임연구관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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