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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판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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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7. 27. 선고 2017고합102 판결

문화 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를 작성·관리하도록 한 것으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블랙리스트 관련 공소사실 대부분과, 노태강 문체부 체육국장 사직 관여 부분이 각 김기춘의 직권남용으로 인정되었고 국정조사 청문회 위증도 인정되어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문체부 1급 공무원 사직강요로 인한 직권남용의 점은 무죄로 판단되었다. 조윤선은 국정조사 청문회 위증이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으나, 블랙리스트 관련 공소사실은 모두 무죄로 인정되었다. 이는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 징역 1년 6월, 김소영 전 문체비서관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것과 대조된다. 


판결은 대통령의 최측근 공직자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실행으로 특정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국민들을 차별 취급한 행위가 권력(직권)남용이라는 것을 밝혔다. 법치주의 발전에 중요한 전기이다. 정치적 공동체로서 ‘국가’의 목적은 ‘국민 전체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국민들을 평등하게 존중하는 것’(equal respect and equal concern)이다. 국가가 특정 국민들을 소외시키거나, 특정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 존립목적에 반한다. 블랙리스트를 통한 국가작용의 차별적 실행은 헌법위반이다. 좌파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더라도, 명백하고 구체적인 위험이 없는 한, 그것만으로 국민들을 국가가 차별취급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나는 당신의 의견이 싫지만, 당신이 의사표현을 할 자유를 위해 싸우겠오”라고 한 볼테르의 말은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기초이다. 김기춘은 수석비서관들에게 “공직자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며 ‘반정부·반국가적 성향의 단체들의 실태조사와 조치를 지시’하였는데(7쪽), 그런 식의 자유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라는 중요한 실체가 빠진 것이다. 재판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면서, 세 가지 점을 지적해본다.

가. 1급 공무원 사직강요 무죄 부분

1급 공무원은 ‘의사에 반한 휴직·강임 또는 면직 대상’이 아니나, 그래도 객관적으로 자의적인 혹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면직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의금지원칙(평등원칙)과 재량권 일탈·남용금지는 공무원의 임면을 포함한 모든 국가작용에서 준수되어야 할 헌법원칙이다. 또 모든 공무원은 ‘국민전체의 봉사자’이고(헌법 제7조 제1항) 특정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다. 판결이 해당 1급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 지원배제 명단의 적용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점’, ‘특별한 직무상의 과오가 없었고’, ‘국정감사 등 국회일정을 앞둔 시점에서 실장 3명을 동시에 교체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을 인정하면서도, 임면권 행사의 재량권이 일탈되지 않았다고 본 것은 납득이 어렵다. 그러면 이들이 사직을 요구받은 것이 무슨 이유인가? 직무상 과오도 없고 교체할 시기도 아니고 이유도 없었는데, 지원배제 적용에 소극적이었다면, 그것이 주된 사직요구가 아니겠는가? 판결에 나타나듯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은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 실행에 소극적인 공무원들을 배척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해당 1급 공무원들의 면직은 객관적으로 자의적인 것이 명백하며,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므로, 위법하다고 보아야 하고, 그것이 상식과 사회통념에도 부합한다.

나. 조윤선에 대한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무죄 부분

조윤선은 전 정무수석(2014.6.~2015.5.) 및 문체부 장관(2016.9.~2017.1.)이다. 판결은 조윤선이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과 문체부에 배포하여 실행하도록 한 점은, 전임자로부터 업무 인수도 제대로 못 받았고, 부하들의 명단 검토 업무에 대하여 제대로 지시·보고·승인도 하지 않았으므로, 직권남용죄의 기능적 행위지배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임자로부터 업무 인수를 ‘구두로’ 받았는지를 불문하고 정무수석이 된 이상 그녀는 그 주요 업무에 대한 책임자이다. 부하들이 명시적으로 지시·보고·승인을 하지 않았다고, 검찰 조서와 달리 법원에서 증언했더라도, 그들(정무비서관 신동철과 국민소통비서관 정관주)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직권남용(각 1년 6월의 징역형 : 2017고합77 판결)이 이들을 관리 감독할 정무수석의 묵시적 지시나 승인이 없었다면 있기 어렵다. 그 들이 상관을 위하여 법정에서 애매한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출된 증거만으로도 이 사건에서 블랙리스트 명단 작성과 실행행위에 대한 부하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책임자인 조윤선의 묵시적인 지시나 승인이 있었다고 본다. 대통령은 대수비 등에서 거듭 문화예술계의 좌편향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시하였고, 이로 인하여 청와대 내에 ‘좌파배제, 우파지원’이라는 기조가 형성되었다(136쪽). 조윤선은 박근혜의 최측근으로서 새누리당 대변인, 대통령선거 경선캠프 대변인, 대통령선거중대위 대변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 박근혜 정부의 여성가족부장관을 역임한 뒤 정무수석이 되었다. 그녀는 박근혜 정부의 좌파세력 척결의 기조나 의지를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는 그녀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의 책임자인 문체부장관으로 임명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조윤선의 정무수석으로서 지위와 역할이나 전체 범행 경과에 대한 인식과 영향력, 부하들의 범죄행위가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들이 모두 유죄 처벌받은 중요한 사항이었던 점을 종합하면,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의 상식과 사회통념에도 부합되며, 그 부하들이 모두 실형을 받은 것과 형평성이 맞다.

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모관계

판결은 “문화예술계가 좌편향 되어 있어 이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따라 청와대 내에서 ‘좌파배제, 우파지원’의 기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고… 대통령이 청와대 또는 문체부에서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받았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며, 문화예술계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교문수석 또는 문체부 장관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인정하였음에도(136쪽), 다음 점들을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공모를 부인하였다. ①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여 그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는데,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확대’를 표방한 것이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그러한 국정기조를 강조하고 그에 따른 정책 입안과 실행을 지시한 것을 두고 특정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지시하거나 기능적 행위지배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없다. ②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를 어떤 절차와 방식을 거쳐 어느 정도까지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는지 알 수 없다. ③ 대통령이 문예지 지원문제, 건전영화 지원문제, 보조금 집행문제, 종북 성향 서적의 도서관 비치문제 등에 관해 직접 언급하고 지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것 자체가 위법·부당한 것은 아니고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는 범행계획에 대한 지시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확대’는 국민들을 이데올로기로써 차별 취급하는 것인데, 좌파로 분류되더라도 공익에 명백하고 구체적인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한 이들에게 국가작용을 차별적으로 할 수 없고, 이는 헌법위반이다. 판결은 ‘보수주의를 표방한 당선’과 ‘대통령의 국민 전체의 대표성과 헌법준수 및 헌법수호의무’를 혼동하고 있다. 판결이 직권남용죄를 인정하게 된 문화예술진흥법 등에서, ‘직무상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된 위치에서 성실하고 공정하게 지원심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헌법적 가치를 구현한 것이다. 위 대통령의 표방(대통령은 말로써 국정을 운영한다)이 헌법적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납득이 어렵다.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받았는지, 이를 승인 내지 지시한 것인지’를 따져 기능적 행위지배를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하여 정부의 중요정책을 수립·추진하는 등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직접 또는 간접적인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뇌물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대법원 1997.4.17. 선고 96도3377 전원합의체판결). 이런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범위의 특수성이 판결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또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의 정책의지와 방향을 수행하는 ‘대통령의 수족’이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서 대통령 비서실의 행위의 계기는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비서실장과 비서관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대통령의 문예지 지원문제, 건전영화 지원문제, 보조금 집행문제, 종북 성향 서적의 도서관 비치문제 등의 언급과 지시’까지 인정하면서도(137쪽), 대통령을 ‘구체적으로 승인내지 지시’ 여부를 따져서만 공범으로 인정하려는 것은, 결국 대통령의 지위와 영향력, 대통령 비서실의 기능, 그리고 블랙리스트 문제의 탄생과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이명웅 변호사(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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