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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캠퍼스, 그리고 서초동의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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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오면 더욱 그립다. 떠나기 전까지는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떠날 것을 미리 염려한 것은 아니다. 우연같이 찾아오는 떠남이 예정된 떠남보다 흔한 일이다. 법원을 맴돌던 삶이 캠퍼스에 머문 지도 제법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그 떠남이 찾아왔다. 몇 달의 생각이 굳어지자 늘 그렇듯이 마법(魔法)에 걸린 듯 또다시 법원 언저리에 깃들였다. 수사(修辭)의 속살이 자명(自明)한데도 그 덮개로 의미가 방황한다.


다시 찾은 서초동의 일상이 캠퍼스의 연가(戀歌) 같진 않을 것임을 능히 짐작하고 나선 길이다. 서초동이 어떠한 동네인가? 캠퍼스의 보통법(普通法)인 ‘긴장으로부터의 자유’가 서초동에서 보장된다는 아무런 기약이 없다. 오히려 ‘긴장으로의 자유’를 스스로 선택할 일이다. 창문을 닫아도 간간히 들리는 거리의 소음을 정겹게 들으면 될 일이다. 

 

우리의 삶이 길 위에 있으니 멀리 가더라도 늘 같은 길일 수 있음은 현학적 언사(言辭)만은 아니다.

서초동에 다시 둥지를 튼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는 설렘이 왠지 기분 좋다. 한번 익숙했던 곳은 오래 떠난 뒤 다시 찾아도 편하다. 이른 아침에 홀가분하게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무언가의 기대감 때문이다. 이룰 수 있는 기대인지에 대해선 마음 쓰거나 초조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러한 기대만으로도 삶의 충전(充塡)에는 지장이 없다.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이면 으레껏 캠퍼스로 돌아온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군자삼락(君子三樂)만은 그대로인 것이 신기하다. 떠나도 순간 돌아오는 그런 순환(循環)을 자각하는 것은 삶의 자그마한 행복이다. 떠나도 떠난 것이 아니다. 떠난 듯하다가도 더욱 가까이 있다. 생각지도 않게 서초동이 재회의 공간으로 재현된다.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약속도 없이 마주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초동이다. 불쑥 나타난 스승과의 우연한 조우(遭遇)는 낯설지만 반갑다. 하루가 늘 같은 연구실의 삶과는 달리 색다른 삶의 활력이 있다. 수많은 나날들을 옆에 두고 같이한 창덕궁의 돌담이 시나브로 그립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서초동 법원 풍경에 익숙해질 일이다.

“나는 가수다”라는 단순한 말의 충격효는 크다. “나는 법조인이다”는 말에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나는 교수다”라는 말이 여운을 남기며 길게 여울진다. 어리석은 제자가 “교수님, 아니 이제 변호사님이라고 불러야 되나요”라고 짐짓 진지한 듯 내뱉은 말이 밉게 들린다. 스승은 제자를 영원히 껴안고 가는가 보다. 캠퍼스의 연가가 변주곡(變奏曲)이 되지 않게 새로운 서초동 연가를 만들어 가야겠다.

 

김홍엽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법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