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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세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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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정식 명칭은 ‘숭례문(崇禮門)’이다. 4대문의 현판을 보면 모두 가로로 씌여 있는데 유독 숭례문 만은 세로로 세워져 있다. 이는 불의 산(火山)이라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으로, 글씨를 세로로 길게 늘어뜨려 성문 밑을 막고 누르면 화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고 한다. 물론 과학적 근거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신으로 치부하고 웃을 일은 아니다. 화기가 도성을 덮쳐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과 백성들의 민가를 침범하는 경우 그 폐해는 말 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러한 사태를 예방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500년 세월을 넘어 가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고들이 발생한다. 특히 산업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안타까운 생명이 희생되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산업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언론에는 ‘위험의 외주화’ 표현과 함께 원청의 잘못을 질타하고, 억울한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을 부각하는 글들을 자주 보게 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인식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원청과 하청의 이분법적 구도로 산업안전사고를 바라보게 하여 산업현장의 안전사고 발생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산업안전사고는 원청과 하청이라는 노동현장의 이원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산업안전사고는 그야말로 복합적 원인을 갖고 있고, 순간의 극히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 일정한 한계점에 이르면 나타나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300개의 사소한 징후가 모여 29개의 작은 사건이 일어나고 29개의 작은 사건이 발생하면 1개의 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산업안전사고 역시 수 십개의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일들이 결과적으로 하나의 사고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우리는 사고가 일어나면 호들갑을 떤다. 정부는 “원청의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 원청의 대표이사를 처벌하겠다”고 엄포성 발언을 늘어놓고, 국회에는 원청책임 강화 입법이 쇄도한다. 원청의 대표이사가 “사고가 없도록 철저히 안전관리를 하라”는 일반적 지시와 관리감독 외에 더 나아가 현장에서 직접 노동자들을 지휘하고 안전수칙을 지키도록 감독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부와 국회의 대책은 하나의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다. 

 

사업주의 책임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제시하여야 한다. 산업현장의 계속되는 사고발생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법이나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안전을 위한 조치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는 것, 안전이 ‘생각’을 넘어 ‘체득’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업주와 노동자 만이 아니라 정부의 책임과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제 역할을 다 하지 않고 책임을 사업주와 노동자에게만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사업자, 노동자 모두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세웠던 이유를 깨닫는다면 산업현장의 사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