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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스킨스쿠버 즐기는 유혜주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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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부 릴로안 수밀론섬의 ‘오아시스’ 포인트에서 바다 속을 누비면서 스킨스쿠버를 즐기고 있는 유혜주(30·사법연수원 42기)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 산호초와 물고기 떼 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멀리 보고 한 발 크게 내딛어 입수, 하강 사인과 함께 호흡기를 입에 물고 BCD(Buoyancy Control Device, 부력조절기) 저압호스의 배기버튼을 누르면서 머금고 있던 호흡을 모두 내뱉으면 푸쉬쉭하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물속으로 몸이 가라앉는다. 슈트 사이로 물이 스민다. 가장 설레는 순간이자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차로 30분만 달리면 동해 바다가 펼쳐지는 경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터라 늘 바다와 가까웠지만, 출렁이는 짙은 코발트 빛 바다는 왠지 모르게 조금은 무서웠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5년 겨울 무렵, 휴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한창 스킨스쿠버에 빠져 있던 동기의 권유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리고 바다가 주는 넘치는 에너지에 매료되어 이제 여유가 생기는 주말이나 휴가 때면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바다로 향한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재미있는 현상들이 발생한다. 수면의 압력은 대기압과 같은 1기압이지만 수심이 10m씩 깊어질수록 1기압씩 높아지게 되므로, 하강 시에는 먹먹해지는 귀의 압력평형을 맞춰야 하고, 상승 시에는 공기탱크 속 고압축된 공기를 들이마신 폐가 과팽창하지 않도록 계속 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상승하여야 한다. 빛은 밀도가 다른 물질을 통과할 때 속도가 달라지는 관계로 같은 물체가 수중에서는 실제보다 약 25% 더 크고 가깝게 보인다(그래서 물속에서 보트만한 가오리를 만났다는 누군가의 말이 허풍 같지만 어쩌면 허풍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한 물은 수심에 따라 파장이 긴 색부터 차례로 흡수하여 빨간색이 제일 먼저 사라지게 되는데, 이를 잘 알지 못했던 때에 장만한 핫핑크색의 오리발과 마스크가 물속에서는 푸르딩딩한 보랏빛으로 보인다는 것은 사진을 보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물의 밀도 때문에 수중에서의 음파는 공중에서보다 더 빨리, 더 멀리 전달되나, 뇌가 소리의 방향을 파악할 시간이 없어 소리의 발생 방향을 알 수 없는데, 물속에서 이른바 ‘대물’을 발견하였다는 신호로 ‘땡땡땡’ 소리가 나면 모두들 그 소리가 어느 쪽에서 난 것인지를 알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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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는 경이로운 순간들이 존재한다. 족히 100년은 넘게 살았을 것만 같은 거북이가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정어리 떼가 다이버들을 휘감으며 산란하는 순간에 서 있기도 한다. 산호 사이사이로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아기자기한 장면뿐만 아니라 수천마리의 전갱이 떼가 회오리처럼 몰아치며 스쿨링하는 웅장한 장면도 마주한다. 태풍이 오기 직전이라 해안가로 나온 것인 줄도 모른 채 고래 떼를 만나 운이 좋다고 환호하다가 다음날부터 태풍으로 다이빙을 할 수 없어 아쉬웠던 순간도 있었다. 바다는 늘 같은 곳에 있지만, 매번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예측할 수 없기에 늘 새롭고 설렌다. 


가장 최근의 다이빙은 필리핀 세부 릴로안 수밀론섬의 ‘오아시스’ 포인트에서였다. 바다 속을 일컫기에는 다소 이질적인 이름이라 생각했다. 입수 후 평탄한 모래바닥을 지나면서 선인장처럼 곳곳에 자라난 산호들과 그 사이로 빼꼼 모습을 나타내는 다양한 물고기들을 만나다보니, 어느덧 모래언덕이 눈앞에 펼쳐지고 마치 모래언덕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강한 조류가 몸을 뒤로 밀기 시작했다. 곧 모래바람에 쓸려 자취 없이 사라질 발자국일지라도 한 발짝 한 발짝 흔적을 남기려는 듯 모두들 거친 버블을 내뿜으며 발을 차서 앞으로 나아갔다. 숨이 차오르고 지쳐갈 무렵 ‘땡땡땡’ 소리와 함께 눈앞에 수천마리의 전갱이 떼가 나타났고, 그들의 압도적인 군무는 더위와 갈증에 지쳐있던 사막의 횡단자들이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처럼, 바쁜 일상을, 그리고 아까의 역조류를 힘겹게 버티느라 지쳐있던 우리를 흥분에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희열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바다 속의 오아시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명명(命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공기탱크로 바다와 마주하는 50분 남짓한 시간은, 나라는 존재가 내 옆을 지나가는 수많은 물고기들이나 산호에 붙어 있는 1mm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이 작은 생명체와 하등 다를 것 없다는 생각에 겸허해지는 순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요한 적막 속에 호흡소리만이 오롯이 귀에 전해져 그 어느 때보다도 살아있음을, 그리고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록을 통해 누군가의 다툼이라든가 범죄와 같은 불행한 순간을 보고 그것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해야 하는 일이 종종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다짐과는 달리 지쳤다는 핑계로 나태해지거나 자만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걱정되는 순간들도 있다. 그렇기에 잠시 쉬어가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으로서의 일탈이 필요하고, 바다는 늘 만족스러운 일탈이 되어 준다.

수심 5m에서 3분간의 안전정지를 마치고 상승 사인과 함께 천천히 수면을 향해 다가간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다. 모든 일탈이 그러하듯이 돌아갈 일상이 있어 더 짜릿한 것임을 알기에, 아쉬움은 뒤로하고 넘실대는 물결에 부서지는 햇살을 한껏 머금는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