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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

닭과 달걀, 어느 것이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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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시작하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인과관계에 관한 딜레마로,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논리적으로 밝히려는 질문이다. 고대 철학자에게 이 의문은 생명과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근원적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고 말할 때, 이것은 서로 순환하는 원인과 결과의 단서를 분류하려고 하는 무익함을 지적하는 말이 된다. 필자는 ‘항소심의 사후심화’에 관한 법원 내·외부의 논의를 지켜보면서 ‘닭과 달걀, 어느 것이 먼저일까?’를 종종 떠올렸던 적이 있다.

2. 항소심의 사후심화에 대한 공감과 비판

먼저, 1심의 충실화에 관하여 반대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기 어렵다. 소송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여 가능한 많은 증거를 채택한 다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증거조사를 하여 신중하게 판결을 선고하겠다는 ‘1심 충실화’에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1심에서 충실히 심리하여 당사자의 진정한 승복을 이끌어내는 재판을 추구하자는 주장은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다음으로 항소심의 사후심화다. 항소심의 구조로는, 1심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소송자료를 수집하여 다시 한 번 심판하는 복심제(覆審制), 1심에서 제출된 소송자료만을 기초로 1심 판결의 당부 등에 한정하여 심리하는 사후심제(事後審制), 1심에서 수집한 소송자료를 기초로 심리를 속행하되 새로운 소송자료를 보태어 1심 판결의 당부를 재심사하는 속심제(續審制)가 있고, 우리나라 항소심은 원칙적으로 속심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통설, 판례이다. 항소심을 순수한 속심구조로 운영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항소법원의 문턱을 넘나드는 사건의 수와 이로 인한 사법부담은 항소심을 심사기능 내지는 사후심으로 운영하는 법제의 경우보다 무려 수배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어서 항소심을 사후심으로 바꾸는 것은 시대적, 세계적 흐름이다. 영미법은 항소심을 원칙적으로 사후심으로 운영하고 있고, 독일과 일본은 항소심에 사실심으로서의 기능을 대폭 축소시키고 있다. 문제는 법원 외부의 비판과 의심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올해 상반기에 전국 변호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변호사 1727명 참여) 응답자의 85.3%가 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항소심의 사후심적 운용 방침에 반대하거나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설문조사에서 변호사 상당수가 “현재 우리나라 1심 법원이 사실심의 충실화를 담보할 수 없다”거나 “1심 재판을 충실히 하여 심리를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항소심이 사후심적으로 운용될 것인데, 이를 서두르는 것은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응답한 것을 보면, 법원의 항소심 개선방안에 대한 재야 법조계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법원으로서는 그동안 법원 외부의 의견을 듣는 노력을 하였다고 할지 모르나, 여전히 소통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였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하는 결과임과 동시에 항소심의 사후심화를 막는 가장 큰 원인은 ‘부실한 1심’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1심의 충실화가 항소심 사후심화의 전제가 된다는 명제가 커다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3. 1심의 충실화와 항소심의 사후심화 무엇이 먼저일까?

부실한 1심을 담당하는 법원에서도 할 말은 있다. 속심제 하에서는 1심에서 한 당사자의 주장이 항소심에서 그대로 유지되므로, 항소이유에서 특별히 이를 지적하지 않거나 그 후의 심리에서 다시 지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원은 1심에서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속심제도를 계속 운영하게 되면 1심의 충실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1심의 심리를 충실화하는 조치를 취한다 한들 항소심으로 도피할 수 있는 성향을 제어하지 못하는 한 소송지연 및 부실화에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가 지배하는 민사재판에서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는 증거를 심리할 수 없는 것도 오로지 법원의 힘으로만 1심의 충실화를 실현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쉽게 말해서, 1심과 동일·유사한 항소심이 1심 이후에 있다고 예상되는 이상, 소송대리인 및 판사 등에게 분쟁의 종국적 해결을 가져올 만큼의 충실한 주장 및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즉, 1심의 충실화는 항소심의 사후심화 없이 나홀로 실현될 수 없으므로, 결국 이번에는 항소심의 사후심화가 1심 충실화의 전제가 된다.


항소심의 사후심화는 법원이 독자적으로 갑자기 추진하는 것도 아니다.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사법개혁위원회, 사법정책자문위원회 등에서 20여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외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또한, 항소심의 사후심화라는 것이 항소심은 1심의 판단을 무조건 존중하자는 것이 아니라, 심리방식의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재판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이다. 법원은 우려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는 1심 재판의 충실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하면서 점차 항소심의 기능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도 있다.


물론, 항소심의 사후심화라는 명목으로 1심에서 충실히 조사되지 않은 증거에 대한 신청이 항소심에서 기각되는 등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1심의 심리가 충실하게 이루어졌음에도 항소심에서 다시 같은 절차를 반복하는 것은 한정된 소송자원을 낭비하는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실질적 권리보장에도 미흡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영미법계 국가뿐 아니라 선진화된 대륙법계 국가들 상당수가 항소심을 사후심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항소심의 사후심화는 단순히 사법부의 업무경감 차원이 아닌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 즉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절차 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차원에서 검토된 결과임을 추측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1심의 충실화와 항소심의 사후심화가 서로 밀접하게 붙어 앞으로 움직이는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어서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4. 글을 마치며

달걀은 닭이 되고, 닭은 달걀은 낳는다. 둘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순환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시작점이 어디인가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달걀과 닭 중 어느 하나라도 필요한 상황이라면, 달걀과 닭 모두를 동시에 챙기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달걀이 없는 닭, 닭이 없는 달걀을 상상할 수 없듯이 우리 법정에서 1심의 충실화 없는 항소심의 사후심화, 항소심의 사후심화 없는 1심의 충실화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동원 판사 (대구고등법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