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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진정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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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 님의 편저인 행복편지 10권에는 진정한 배려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등병이 겨울 날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소대장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받아 와서 빨래를 하라"고 시켰고, 이등병은 그 지시를 따랐다가 취사장에 있던 고참에게 얼차려만 받고 돌아와 계속 빨래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중대장이 같은 내용의 지시를 했으나 이등병은 고참의 얼차려가 두려워 지시를 무시하고 그냥 찬물로 계속 빨래를 하였다. 이를 목격한 인사계는 "내가 세수를 하려고 하니 뜨거운 물을 받아와라"고 한 다음 이등병이 취사장에서 물을 받아오자 그 물에 언 손을 녹일 것을 지시해 이등병이 비로소 손을 녹일 수 있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배려를 받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배려가 아니라면 상대방에게는 불편만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민사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사건 당사자 본인을 배려한다고 송달불능이 된 경우에 주소보정을 하라고 말만 하면 당사자는 주소보정이 뭔지 몰라서 다음 기일에 그냥 나옵니다. 주소보정에 관한 안내서와 뒷면에 주소보정 양식을 인쇄한 안내문을 교부하여도 일부 당사자는 그냥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되면 주소보정에 관한 안내서를 실무관에게 보관시킬 테니,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라가서(또는 몇 호실에 있는 실무관을 찾아가서) 잘 설명 듣고 그 자리에서 주소보정서를 작성해 놓고 가시라고 안내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면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진행할 때 당사자들에 대한 진정한 배려는 두 가지가 전제가 되어야 이루어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당사자들을 배려하려는 마음이고,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 절차 전체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토대로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배려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판 절차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 대충 얼버무리면서 당사자가 더 헷갈릴 수 있는 설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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