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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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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하지만 뒤끝은 없는 그가 이혼 법정에 섰다.

그의 아내는 이십여년 전 폭행의 기억까지 낱낱이 들추었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내의 뒤끝을 탓했다.

“언제 일인지, 왜 그랬는지 생각도 잘 안나요. 그 때 미안하다고도 했고요. 싸울 때마다 옛날 일까지 모조리 끄집어내니 자꾸 더 싸우게 되죠. 뒤끝이 길어도 어쩌면 저렇게 긴지 모르겠어요. 저는 좀 욱하긴 하지만, 그래도 뒤끝은 없다고요.”

혼인 기간 동안, ‘욱하는’ 그는 종종 집안 살림을 부수거나 아내를 때렸다. 그리고 ‘뒤끝이 없는’ 그는 다음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내를 대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쉽게 마음을 풀지 못했다.

그때마다 그는 아내를 ‘꽁하고 소심한 성격’이라 탓하며, ‘뒤끝 없이 화통하고 시원한 성격’인 자신을 좀 닮으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그가 ‘욱’할 때마다 ‘뒤끝’을 쌓았다. 그러다 그것이 한계점에 다다랐을 무렵 결국 결별을 택했다.

따지자면 그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였다.

그는 당당하게 뒤끝이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욱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분노를 모두 쏟아내 버렸는데, 남은 감정의 찌꺼기가 있을 리 없다.

따지자면 아내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그녀가 뒤끝이 있다고 하지만, 그녀에게 뒤끝이란 무엇일까. 욱하는 상대방의 분노를 오롯이 받아 내고도 아무 일 없었던 듯 툭툭 털어내고 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이상 감정의 찌꺼기가 켜켜이 쌓여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했다. 뒤끝이 없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욱함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했다.

그는 아내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했다. 아내가 자꾸만 예전 일을 끄집어낸다면, 그때라도 다시 진정어린 미안함을 전했어야 했다.

결국 ‘욱하는’ 그와 ‘뒤끝 있는’ 그녀는 결별했다.

욱하지만 뒤끝이 없다는 것은 화통함도 시원함도 아니었다. 인내와 배려, 공감의 부족이었을 뿐.

어쩌면 뒤끝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피해자만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