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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논두렁 시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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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존경하옵는 장충기 사장님…'으로 시작되는 모 언론사 간부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정유라 승마지원'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의혹 사건의 핵심 피고인 가운데 한 명인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급)에게 감사나 청탁성 문자를 보낸 사람 가운데에는 전현직 법원·검찰 고위간부까지 끼어있어 충격을 더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이 평소 주요 언론사는 물론 법원·검찰 간부들까지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정농단 사건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임원들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이 들끓었다. 


하지만 문제는 특별검사팀이 압수한 장 사장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이 문자메시지들의 내용이 어떻게 공개됐으며, 하필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선고 공판을 목전에 둔 시점에 나왔느냐 하는 점이다. 특검과 검찰에서 확인한 내용이라며 기사화한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법조계에서는 특검 등의 의도적인 흘리기라는 의심스러운 시선이 많았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이자 특검과 변호인단이 배수의 진을 치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인 뇌물 혐의에 대한 법원의 최종 결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에게 흠집을 내 '유죄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측의 뇌물제공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선고되면 그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 등에게도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총력을 다하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검은 형사소추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살아온 인생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공소장에 적시된 피의사실 가운데 증거로 인정되는 혐의 사실을 가려내 이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피고인에게 유죄로 인정되는 혐의 사실에 대한 책임만 물어야 하는 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 원칙'과 '죄형균형의 원칙'의 요체다. 


장 사장의 휴대폰 속 메시지 내용이 범죄 혐의와 관련이 있다면 검찰 등이 수사해 처벌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이번 뇌물 사건과는 무관한 문자메시지가 민감한 시점에 공개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유감이다. 이번 일을 보면서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논두렁 시계' 논란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기자 혼자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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