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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정의회복인가, 정치보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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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흥행에 성공한 우리의 영화는 과거회귀형이 많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미국 영화는 미래의 세계를 내다보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영화 주제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사람으로서 얼핏 이유를 찾아보면, 우리에게는 정리되지 않고 청산되지 않은, 그래서 돌아볼 과거가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제목을 나열하지 않아도 돌풍을 일으킨 몇몇 작품들은 과거 향수를 자극하거나 지나간 현대사와 관련된 것이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과거사도 있고 역사인식에 갈등이 있는 사건도 많아서 단골 영화소재가 되는 모양이다. 영화의 형식으로 과거사 문제의 해결에 메시지를 던져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영화 관람이 ‘영화정치’로 의미가 부여되고 조명을 받게 된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오늘의 현실을 인식하고 미래를 내다보려는 것이므로 다가올 미래를 미리 예측해서 영화화하는 방식과 미래지향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적폐청산이 한창이다. 과거사 정리가 화두다. 새 정부 1순위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적폐청산은 우리사회를 아주 불공정하게, 또 불평등하게 만들었던 많은 반칙과 특권을 일소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정 사건과 특정 세력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적폐청산의 목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미 적폐청산의 무기가 될 검찰과 법무부를 이전 정부와는 다르게 구성해 놓은 바 있고, 국정원 적폐청산 TF도 가동 중이다. 경찰도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경찰의 과거 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조직의 수장으로서 처음으로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의 강압, 부실 수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야권에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정조준 하는 것이어서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한다. 적폐청산을 가장한 정치보복과 지역과 세대를 가르는 분열이라고 비난한다. 보수언론도 정치는 포용과 관용이어야 한다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풍전등화의 안보위기상황까지 들먹이면서 지금은 적폐청산의 시간은 아니라고 비튼다. 


그렇다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대로 두자는 것인가. 적폐 안에 불법과 부정의가 숨어 있는데도 덮어두자는 것인가.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의 증거들이 드러나는데도 못 본 척하라는 것인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진실과 정의를 왜곡한 정치검찰의 역사는 이미 지나간 일이므로 구석에 처박아 놓고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야 미래가 보인다.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인적 청산은 그 다음 문제다. 진실이 규명되어야 재발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정의회복이다. 공정과 평등의 세상을 만드는 길이다. 사회적 갈등도 줄어든다. 과거사에 책임 있는 야당이 반성하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반발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