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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마지막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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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자 아내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명문대 교수가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스틸 앨리스(Still Alice)'라는 영화가 있다.


언어학자인 앨리스는 자신이 말을 잃어가고 있음을, 기억과 판단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그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고 있음을 담담히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병의 모습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앨리스는 말한다. “저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요.”

 

가정법원에는 ‘나’를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온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치료와 보호를 받아, 부족하나마 이 세상의 일부가 되고, 그들 자신으로써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성년후견이다. 

 

신체적 건강을 잃은 사람들 역시 그들처럼 의료진이나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적어도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래서인지 더 쉽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지만 ‘나’를 잃어버린 그들은 스스로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는 상상할 뿐이다. 당연했던 일상이 조금씩 허물어져 갈 때의 막막함,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게 되는 공허함,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에 대한 두려움. 

 

영화 속에서 앨리스는 자신의 병이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며 울었다.

 

‘나’를 잃어버린 그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라 무심히 넘겨도 괜찮은 걸까. 어쩌면 표현하지 못하는 인식 저편에 위로받지 못한 짙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앨리스가 마지막까지 기억했던 한마디는 ‘사랑’이었다. ‘나’를 잃고 성년후견사건의 ‘사건본인’으로 가정법원을 찾은 그들이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한마디 역시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그래도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