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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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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과 다른 판결이나 논문을 쓴 사람 등 법원행정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에 대해서는 보복성 인사로 굴욕감을 맛보게 한다거나 괴롭힐 수 있다. 이는 그 판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한다. 이러한 인사가 무서운 것은 이 같은 보복이나 본보기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행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법원행정처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판사들은 넙치처럼 늘 그쪽만을 엿보며 재판을 하게 된다. 당연히 판결의 적정성이니 당사자의 권리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 법원행정처가 아니라 일본 사무총국 이야기다. 사무총국 근무를 포함해 약 30년 동안 판사생활을 한 세기 히로시 메이지 대학 교수가 그의 저서 ‘절망의 재판소’에서 진단한 일본 법원의 모습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현실이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세기 히로시의 글에서 사무총국을 법원행정처로 바꿔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우리 법원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49년 법원조직법 제정 당시 입법자들은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사법행정을 법무부로부터 분리해 사법부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독일 역시 판사들이 법무부로부터 독립한 사법행정의 자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니, 일찍부터 사법행정권을 법원이 스스로 행사하도록 제정된 법원조직법은 입법자들의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원행정처는 상당한 기간 동안 소속 법관들의 사명감과 업무 추진력을 바탕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는 등 소수의 인력으로 효율적인 사법행정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법무부 등이 법원에서 필요로 하는 사법행정 업무를 지원하지 않음에 따라 법원행정처는 담당 업무 영역을 확대해나갔고, 사법행정의 비대화라는 문제에 부딪쳤다. 아울러 효율성을 이유로 한 소위 엘리트 법관 위주의 운영은 사법부의 관료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법정책의 일방적 수립, 법관들의 사법행정에 대한 공감 부족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법원행정처의 개혁이 필요한 시기다. 사법정책은 수립단계부터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고, 사법행정에 법관들이 참여해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비대한 행정처 기능을 효율적으로 분산하고, 심의·의결기구를 통해 사법행정을 투명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사법행정기관을 재편성해, 연구·의사결정·집행 등 사법행정의 단계별로 별도의 기관에서 이를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현재 이 3개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는 법원행정처를 집행 기관으로 바꾸고, 절차적 민주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별도의 심의·의결 기관들을 설립해 의사 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법정책의 수립 등 연구 업무는 별도의 연구 기관으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법관의 사법행정 참여는 연구와 의사결정 부분에 집중하고, 집행 등 사법행정 업무는 순차적으로 법관이 아닌 전문가에게 이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정 법원조직법의 입법자들이 사법행정을 독립시켰던 의미를 곱씹어 보자. 법원행정처가 재판의 독립과 효율적 운영을 지원해 정의로운 재판이 이뤄지는 데 기여한다면, 우리는 절망의 재판소가 아닌 희망의 법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