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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영화 ‘파이란’을 보고… 최지현 변호사

사진 한 장 품고 하와이 이민 노동자에 시집간 조선여인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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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변호사회 소속의 '부변 영화동호회' 회원들이 지난 겨울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cgv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가 필자인 최지현(군법 15회·법무법인 다율) 변호사.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누구나가 손쉽게 찍을 수 있게 되어버린 사진. 한때 매우 귀했던 사진이 너무도 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사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증명사진이 아닐까싶다. 증명사진은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지만 가장 무미건조한 사진으로도 인식된다. 그러나 지난 주말 우연히 접한 영화 ‘파이란’은 증명사진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했다. 

 

주인공 강재는 인천항 뒷골목의 삼류건달이다. 불법테이프 유통을 하며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보내던 강재는 어느 날 파이란이라는 여인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의 기억에도 없는 여인은 그가 푼돈을 받고 위장결혼을 해준 여자였다. 강재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보내던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게 된 강재를 끝내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병으로 죽는다. 강재는 경찰서로부터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라는 연락과 함께 그녀의 편지와 사진을 보게 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파이란은 아무 의미가 없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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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씨 고맙습니다. 강재씨 덕분에 한국에서 계속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친절합니다. 그치만 가장 친절한 건 당신입니다. 왜냐면 저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만약 만난다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습니까? 응석부려 죄송합니다. 제 부탁은 이것뿐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재씨, 안녕.’

 

사망확인 절차를 다 마친 강재는 부둣가에서 파이란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다가 오열을 터뜨린다. 그는 삼류인생인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과 파이란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무심함 등 복합적인 감정에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파이란은 강재의 증명사진을 책상위에 두고 매일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진 속 강재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그녀에게 정말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따스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그것이 더욱 그녀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증명사진 한 장에 자신의 모든 삶을 걸었다. 강재의 증명사진은 그녀에게 그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그녀가 그의 아내로 죽을 수 있게 만든 유일한 희망이자 소원이었다. 

 

결코 증명사진은 무미건조하지 않았다. 사진은 빛을 담은 과거이고 파이란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인 동시에 슬픔이기도 하다. 시간과 기억의 흔적이자 존재의 흔적이고 삶의 흔적이다. 세상을 비추었던 한줌의 햇살이면서 또한 순간 사라질 시간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우리들 삶에는 강재를 사랑했던 파이란과 같은 여인이 있었음을, 그러나 지금은 없는, 슬프면서도 애잔한 삶을 살다간 수많은 기억과 흔적들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혹여 우리들은 쉽게 찍고 지워버리는 오늘 날의 사진과 같은 삶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사색하는 것은 어떨까. 증명사진에 얽힌 우리 역사 하나를 옮기며 글을 갈무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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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01명의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린 조선민중은 한 달 16달러의 임금에 생의 모든 것을 걸고 하와이로 향했다. 그 뒤 1905년까지 65차례에 걸쳐 7천여 명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고종은 멕시코 한인 이민자의 처우가 짐승보다 비참해 한때 이민을 중단시키기도 했지만, 국력이 약하고 재정이 바닥나 노동이민을 계속해서 보냈다. 그런데 이민자의 절대 다수가 남자여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여성이 필요했다. 당시 하와이에서는 동양인과 미국인의 결혼을 금했고, 그렇다고 선을 보기 위해 여자가 건너올 수도 없었다. 이때 왕실이 생각해낸 것이 사진결혼이었다. 사진을 주고받아, 마음에 들면 신부가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 사진결혼으로 1924년까지 950여명의 조선여자들이 하와이로 향했다. 사진으로 맺은 인연도 숙명으로 생각하고, 지아비 사진 한 장 품고 태평양을 건너간 이들. 그러나 가서 보니 사람에 속고, 살아보니 삶에 울며 눈물로 지새우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사진으로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갔다. 


물론 초상사진으로 부부연을 맺은 일이 서구 사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다만 하와이 이민사처럼 전체 이민자가 사진으로 결혼하는 사례는 드물다. 사진 한 장에 모든 것을 바치고, 사진 속 남자에게 운명을 맡긴 채 태평양을 건너간, 슬픈 운명의 역사적 초상이 우리 역사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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