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결정

118512.jpg

지역 잔당에 불과한 독일의 나치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유래 없는 대공황의 여파 때문이었다. 직장을 잃은 가장과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의 분노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로 분출하고 막말 선동에 현혹되었던 것이다. 경제적 고통은 정치적 결정에 악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불평등도 이에 못지 않다.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론’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80년대 초는 구미제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유래없이 완화된 시기였다.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을 상회하면서 임금소득자들에게 부의 이전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부의 집중 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반면, 소득세·법인세 감면이 뒤를 이었다. 특히, 경영전문가들에게 천문학적인 급여 제공이 허용되었다. 피케티의 말을 빌리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English-speaking countries)’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2010년 현재 미국과 영국의 부의 집중 현상은 소득상위 10% 계층의 소득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48%에 달할 정도다. 지난해 영어 종주국에서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영국은 국민투표를 거쳐 EU 탈퇴라는 결정(Brexit)을 내렸다.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은 대영제국의 주권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실은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난 미 대선은 과거에 보지 못한 현상의 연속이었다.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버니 센더스 상원의원에 의외로 고전했다. 전국민 의료보험, 최저임금인상과 남녀 평등임금지급, 월스트리트와 거대은행 해체라는 사회주의 공약이 젊은 층에 먹혀 들었다. 반면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이단아 트럼프는 쟁쟁한 기성정치인들을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트럼프 승리의 원동력은‘미국우선주의’공약이었다. 외국과의 FTA를 재협상하고 국내 제조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은 극우파와 백인 노동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하지만 역풍이 거세다.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은 600억 유로(73조 300억원)가량의 이혼 위자료를 물어야 할 판이다. 런던의 금융가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도 자신의 선택에 고개를 갸우뚱 할지 모르겠다. 대통령 취임식이 지난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탄핵설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안쓰럽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누적된 경제적 불평등, 치솟는 청년실업률, 빈곤한 노년, ‘헬 조선’ 대한민국. 그럼에도 분노를 촛불로 대신했다. 장미대선도 무사히 치렀다. 전세계가 우리의 성숙한 민주주의에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누적된 경제적 모순이 하루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도 언젠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새 정부의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