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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형사소송법의 ‘무죄’ 선고 규정의 개정을 바란다

이승택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 전 진주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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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재판부와의 연고를 내세워 엄청난 거액을 받고 사건을 수임한 이른바 전관 변호사 문제로 법원을 비롯한 법조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전관예우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이다.

필자가 21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보아온 우리 사법부는 많은 제도적 개선을 이룩하였고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우리 사법제도가 우수하다는 객관적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왜 우리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올라가지 않는 것일까?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진단이 있고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필자는 ‘재판을 통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하나의 작은 방안으로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 우리 형사소송법 제325조 무죄 선고 규정의 개정을 제안한다.

법정 풍경 하나 - 밤늦게 귀가하던 23세의 여성이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대학생 甲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기소되었다. 甲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전관 변호사가 甲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어서 공판기일마다 많은 기자들이 법정에서 사건 진행 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피해자의 부모님들은 甲이 범인임을 확신하면서 甲에 대한 강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공판정에서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이 매 공판기일마다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모든 심리가 이루어진 후 담당 재판부는 甲이 범인일 가능성이 좀 더 높지만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담당 재판부는 甲이 범인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는 하나 확신할 수 없어서 ‘검사 입증책임의 원칙’, 즉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으로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의하여 甲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甲이 진범이라고 믿고 있는 피해자의 가족들은 “甲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데 왜 무죄냐, 억울하게 죽은 우리 딸만 불쌍하다”라고 하면서 절규한다. 언론을 통하여 甲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기사를 접한 많은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아니냐?”라는 말로 사법부를 비난한다. 여기에 甲의 변호인이 전관 변호사라는 사실까지 더해져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사법부를 의심한다.

언어가 사고를 프레이밍(framing)한다고 한다. '무죄'라는 판결 선고를 통해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으로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떠올리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無罪’, 법적 의미가 아닌 순수한 언어적 의미로는 ‘죄가 없음’이다. 영어로는 ‘innocent’이다.

이처럼 우리 형사소송법은 검사가 피고인이 범인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즉 판사로 하여금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 ‘무죄’를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우리 형사소송법은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하여야 하는 경우(형사소송법 제327조)와 ‘공소기각의 결정’을 선고하여야 하는 경우(형사소송법 제328조)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공소기각의 ‘판결’이나 공소기각의 ‘결정’은 모두 유·무죄의 실체적 판단을 할 사유가 존재하지 않아 유·무죄의 실체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민사소송의 경우와 비교하면 訴가 부적법하여 원고가 구하는 청구의 當否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않고 訴를 却下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우리 형사소송법은 유죄임을 전제로 하는 형의 선고 판결과 무죄 판결, 그리고 공소기각 판결 내지는 결정 등 크게 세 가지 判決 主文 形態를 규정하고 있다. 입법론적으로 보면 일본의 형사소송법과 동일하다(일본 형사소송법 제336조 이하 참조). 그런데 우리가 미국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영미의 경우 우리 형사소송법상 무죄를 선고할 경우에 해당하면 판사는 ‘innocent’라고 선고하지 않고 ‘Not guilty’라고 선고한다. ‘유죄 아님’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도 우리 형사소송법상 무죄 선고에 해당하는 독일 형사소송법 제267조 제5항의 ‘Wird der Angeklagte freigesprochen...’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라고 일반적으로 해석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기소된 피고인에게 기소된 범죄 혐의를 벗겨 준다는 의미이지, 우리의 ‘無罪’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즉 ‘죄 없음’의 의미는 아니다.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470조는 “법원은 소추된 사실이 형법상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증명이 없거나 피고인의 행위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때에는 공소를 ‘기각’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입법론적으로 보아도 우리가 형사소송법을 제정할 당시 참고로 한 일본 형사소송법 외에는 주요 국가에서 검사가 피고인이 범인임에 대한 입증에 실패한 경우 ‘죄 없다’는 의미인 ‘無罪’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우리 형사소송법이 영미식의 당사자주의적 요소를 주요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상, 우리 형사소송법을 속히 개정하여 현재의 無罪 선고는 ‘검사의 공소를 기각한다’로, 현재의 공소기각 판결이나 결정에 해당하는 사유들이 있는 경우 ‘검사의 공소를 각하한다’로 主文의 형태를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번거롭고 그 동안 쌓아 올린 형사소송법의 체제를 흔드는 것이라면 적어도 현재의 無罪 주문에 한해서라도 영미의 ‘Not guilty’에 해당하는 형태의 주문(적절한 우리 말 문구가 떠오르지 않아 현재로서는 ‘Not guilty’의 직역인 ‘有罪 아님’이라는 문구로의 개정 정도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으로 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법률신문이 제언(提言) 코너인 '바꿉시다!'를 신설합니다. 법령 등 법제도나 법조계 관행 가운데 개선이 필요한 점이 있으면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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