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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분별심 내려놓기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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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에게 법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단순한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법 이외의 내용은 법관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으로 채우게 되는데, 주된 구성요소는 선입견이다”라는 지적은 뜨끔하다. 법관도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소설가 김연수)에 빠질 수 있는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생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증명일 때가 많다. 이는 법관이 접하는 세계가 협소한데도 그가 원칙과 신념이 확고하여 흔들릴 줄 모르는 한결같은 이라면 조금 심각해진다. 여기에도 법관이 무엇보다 자신의 견해에 대하여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재판에서 양 당사자는 각자 자기가 옳다고 믿는 기준으로 분별한다. 이 피할 수 없는 이견이나 갈등에 대한 법관의 판단 역시 자신이 지닌 옳고 그름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문제는 법관의 분별심이 쉬이 작동하여 ‘옳지 않다’고 이미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왜 저런 얘기를 하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그것에 사건의 가장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게 분별은 생각과 마음의 문을 닫는다.

철학자 이진경은 그의 '책 불교를 철학하다'에서 조언한다. “호오와 애증의 선판단이 함께 작동하는 분별은 생각 이전에 가려서 선택하는 것이어서 생각의 방향을 이미 결정한다. 분별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가 쉽게 판단하고 분별하기 힘든, 아니 섣불리 해서는 안 될 타자성의 영역이 존재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만났을 때 그것을 거부하고 밀쳐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려고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것이다. 분별을 넘어선 곳에서 지혜가 발동하고 정의는 시작된다.”

지금의 나에 대한 믿음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척도로서의 나를 내려놓고, 남들의 말과 행동을 먼저 그들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는 것. 역시 어렵겠다. 그래도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시인 정호승)를 되뇌면서 절(108배)을 다시 시작한다. 내가 분별하는 '어떤' 사람, '어떤' 사건에서 수식어를 제거하여 사람과 사건만을 남겨야 비로소 제대로 만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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