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한·미 법조산책

17. 미국 연방대법관 임명과 필리버스터의 역사

박영선 변호사

43.jpg

앤톤 스캘리아 판사의 돌연사로 생긴 미국 연방대법관 공석에 드디어 닐 고서치 판사가 임명되었다. 9인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대법관석의 마지막 자리를 두고 2016년 2월 이후 1년 넘게 있었던 정치 투쟁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고서치 판사가 임명되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 머릭 갈랜드 판사를 등용하려고 했지만 공화당의 거센 반발에 막혀 실패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비판 받은 부분 중 하나는 그가 일리노이 상원의원 시절 필리버스터를 통해 한 연방 대법관의 임명에 반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사무엘 알리토 판사를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알리토 판사의 임명을 막으려 했지만, 종국에 알리토 판사는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스캘리아 판사의 후임이 중요했던 이유는 진보와 보수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 연방대법원 구성에 마지막 결정타를 내릴 수 있는 대법관 등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굵직한 정치 이슈를 들자면 낙태의 자유, 성소수자들의 권리, 이민법과 의료혜택법 등이 있다. 특히 Roe 대 Wade로 잘 알려진 낙태법의 대표적 케이스 등이 닐 고서치 판사의 등용으로 인해 어떻게 재조명 될지가 법조계의 초관심이다. 판례법을 중심으로 법을 만드는 영미법의 전통으로 볼 때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사회의 근간을 바꿔 나갈 수도 있다.

닐 고서치 판사의 임명과정에서 다시 관심을 끈 정치적 절차가 있다. 바로 무제한 토론으로 알려진 필리버스터이다. 필리버스터는 고대 로마로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어떤 안건에 대해 직접 반대하기보다 안건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아무 주제나 무제한적으로 토론함으서 상대방의 진을 빼고 시간을 끄는 작전이다.

미국 연방 상원의 의사 결정은 100명의 상원의원 중 60명의 정족수에 의해 결정된다. 상원의원 중 한 명이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공표하면, 60명의 상원의원들이 강제로 필리버스터를 그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60명이라는 의결 정족수를 51명으로 변경이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Nuclear Option’이라고 한다. 핵폭탄을 사용하는 것 같이 정말 필요할 때만 과반수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번 고서치 판사 임명의 경우도 민주당 측에서 필리버스터를 사용하였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재빠르게 핵폭탄 옵션을 사용함으로써 고서치 판사의 임명이 상원의원들의 표결에 부쳐졌고 인준되었다.

고서치 판사의 임명이 비교적 수월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새 정책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화당내에서도 정치기반이 약한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법안인 의료혜택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당이 지지하지 않는다면 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과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나섰다. 이런 대립각을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과 공화당이 다시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찾은 안건이 바로 고서치 판사의 대법관 임명이었다.

정치전문가들은 고서치 대법관 임명 때 사용된 필리버스터에 대해 많은 우려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미국 연방 국회의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정당이 상하원을 다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필리버스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되면 소수당의 의견은 아예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논쟁과 토론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안건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충분한 검토 없이 통과되면 민주주의 발전에 큰 저해 요소가 될 것이다.

11월 선거이후로 미국은 한국사회처럼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중도를 지키는 중립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빛을 잃어 버리고 사회의 모든 현안에 대해 보수 아니면 진보를 택해야 되는 실정이다.

미국 연방대법관의 임명절차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의원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렇게 임명 과정 자체는 다분히 정치적이지만, 임명 후 대법관의 행보는 정당의 압력과 상관없이 헌법을 옹호하고 법의 정확한 해석과 적용에 있어야 할 것이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