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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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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서 늙어 죽어!”

외도의 끝,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을 향해 아내가 절규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오래전 방영된 것이라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아내의 한마디는 가끔 떠올리게 된다.

현실의 세계에도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상처 입은 많은 남편들과 아내들이 있다. 주저 없이 배우자와의 결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혼인 생활을 이어가는 부부가 어쩌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들이 결별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

여전히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 때문일 수도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 문제였을 수도 있고, 오기나 보복적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꼭 집어 말할 수 있을까. 더는 함께할 수 없다 생각하며 이혼의 소를 제기하였다가도, 그들은 수차례 흔들리고 고민하다, 결국 소를 취하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소를 취하한 뒤에도, 상간자에 대한 소는 대부분 끝까지 계속된다.

엇비슷한 정도의 부정행위라도, 혼인이 파탄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민사법원에서 정해지는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 액수는, 혼인 파탄을 이유로 가정법원에서 정해지는 위자료 액수보다 다소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지 않았으니 정신적 고통이 덜하리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과연 그럴까. 어느 하나라고 집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으로 배우자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한 수많은 남편들과 아내들의 고통이, 이혼을 선택한 경우의 고통보다 적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을까.

그들 중 일부는 무시로 떠오르는 아픈 기억을 잊으려, 무너진 배우자에 대한 믿음을 다시 세우려 노력하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수년이 지난 후 결국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든 그렇지 않든 그 고통에 대하여 상간자는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

그 고통의 깊이를 가늠함에 있어, 결별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덜 아플 것이라 생각하는 무심함을 이제는 버려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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