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法臺에서

다가가는 인기척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109667.jpg

1073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목포 신항만에서 마주하고는, 작가 김훈의 순직 소방관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다. “숨진 대원이 암흑 속에서 고립되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전짓불 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울음을 참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결국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중략) 고립된 대원들이 그 암흑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중에서) 


재판을 하게 된 후 언젠가부터 ‘사회적 죽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의 슬픈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와 그 가족이 감당했을 불운과 불행을 법으로 구제해야 하는 부정의(不正義)로 전환시킬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워진다. 혹여 법정에서마저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법원에 재판의 당사자로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정현종의 시 ‘방문객’ 중에서) 그래서 고 한기택 판사는 “목숨 걸고 재판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부족한 내게는 ‘온몸으로 재판한다’는 바람도 매번 어긋난다. “그를 법정에서 온몸으로 대면한다. 그의 말과 글, 표정과 몸짓, 그리고 침묵이 보내는 신호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공감적 경청과 역지사지의 이해로 그를 내게 설명한 후, 그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응답한다.”


온몸으로 진실을 말하는 당사자가 재판에서 정확하게 이해받지 못하면 새로운 고통을 느낀다. 사람은 법을 지키지 못하여 법원에 오지만, 법관은 재판을 통해 ‘법이 사람을 지킨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번 탄핵 결정에서 김이수, 이진성 헌법재판관의 보충의견이 보여준 것처럼. 


2014년 4월 16일을 실시간으로 같이 보낸 우리는 세월호로 이어져 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별이 된 아이들로부터 이 말을 건네받았기에, 지금 법정으로 다가가는 인기척에 온기를 싣는 일은 실패해서는 안 되겠다. 부디 아홉분 모두가 신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