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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불신비용과 정책투명성

이인석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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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메일로 영업비밀을 누설한 사실이 있나요?"(원고)

"없습니다."(피고)

"당신 컴퓨터를 보여주세요.(원고)

"보세요. 없습니다."(피고)

"삭제했군요. 컴퓨터를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전문가에게 맡겨 정밀 분석해주시길 바랍니다. (…) 분석 결과 없군요.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를 믿을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 감정을 해보고 당신이 컴퓨터에 접근한 시간, 출입 CCTV 등을 분석해 봐야겠습니다."(원고)

우리 법정과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지 못하니 거짓말탐지기를 실행시켜야 하고, 카드내역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비밀녹음과 몰래카메라를 동원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깊숙이 모자를 눌러쓴 채 대포폰을 쓴다. 이 이상한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는 요즘 시대에 사람의 말을 믿는다는 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불편한 낭만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 신뢰도는 34개국 중 29위, 타인에 대한 신뢰는 35개국 중 23위라고 한다.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는 정책투명성이 138개국 중 115위로 최하위권이다. 이러한 불신의 비용은 엄청나다. 세계은행은 사회적 신뢰도가 10% 상승할 때 경제성장률이 0.8%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으니 그만큼이 고스란히 불신비용이 되는 셈이다.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연간 최소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 결과도 있다. 여기에 불신으로 인하여 사람들 마음에 남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까지 더하면 그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커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회적 갈등이 G7(선진 7개국) 수준까지 개선되면 3%대 성장률 달성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불신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품성과 자질이 문제'라거나 '서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선진사회는 정책투명성이 높은 반면, 불신의 사회는 정책투명성 역시 낮다는 대목이다. 나의 생활과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정책 등이 어떠한 기준으로 결정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결국 각종 음모론에 귀 기울이게 되고, 불신을 확대 재생산 하게 된다. 이러한 불신의 근거들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국에 퍼진다.

불신비용을 줄이고 서로 신뢰하여 그 신뢰를 기반으로 번영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료 주도의 권위주의와 밀실행정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민주적 토론을 거친 정책결정과 집행, 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비밀주의와 침묵을 기반으로 한 엘리트 중심의 리더십으로는 더 이상 우리사회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다"라는 브랜다이스(Brandeis, Louis Dembitz) 미국 전 연방대법관의 말과 같이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불신의 비용을 줄이고 발전하기 위해 실천해야할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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