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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아버지의 성(姓)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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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긴장한 표정의 앳된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소년법정에 들어섰다.

소년의 환경 조사서에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였고, 소년은 어머니와 계부, 계부의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함께 온 아버지는 소년과 성이 달랐다. 눈매가 꽤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계부인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애 엄마가 애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관계도 정리시킬 겸, 한 달 전쯤에 제가 데려왔습니다. 전학도 했고요. 아이 데리고 재혼한다고 해서, 잘 살라고 아들 성 바꾸는데도 동의해 줬는데, 이제 제가 데려왔으니 다시 성을 바꾸려고요.”

그는 소년의 친아버지였다. 성과 본이 다른, 눈매가 닮은 친아버지.

아마도 소년은 곧 친아버지를 따라 원래의 성과 본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성이 바뀐 것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잠시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수년 전 성본 변경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심문실에서 중학생 아이를 만났다. 신청서에는 새아버지의 성과 본으로 바꿔 달라는, 아이 스스로 쓴 진술서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함께 온 어머니를 내보내고 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 성과 본을 바꾸길 원하느냐고. 아이는 사실은 바꾸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새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미안해서 차마 싫다는 말을 못했는데, 친구들이 뭐라고 할지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성과 본을 바꾼 후 아무도 모르게 전학을 가자고 하시지만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성본 변경은 오로지 아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남 보기에 좋도록 혹은 내 마음에 흡족하도록 바꿀 것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을 위한 신중한 바꿈이어야 한다. 멀리보고 깊이 고민할 일이다.

아니다. 어쩌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진정으로 바꾸어야 할 것은, 아이의 성과 본이 아니라, 성과 본이 다른 아버지와 아이, 성과 본이 다른 형제자매를 바라보는 우리들 가슴 속의 뿌리 깊은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