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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대통합의 전제조건

이인석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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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주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은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라는 자명한 원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오늘의 선고가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기를 바란다”며 “또한 어떤 경우에도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그간의 갈등을 통합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또다른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피청구인 측 지지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판결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태극기 집회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진다. 피청구인 역시 판결에 승복한다거나 결과를 존중해 다시 함께 나아가자는 취지의 성명발표 없이 불복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

2000년 11월 7일 실시된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떠오른다. 당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백중세였다. 총득표에서 고어는 부시를 앞섰고 선거인단 수도 앞서고 있었다. 플로리다에서 2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시가 고어를 1784표 차로 앞섰다. 주법에 따라 재검표를 한 결과 표차는 현저히 줄었고 고어는 전면적인 재검표를 요구했다. 이에 주 대법원이 재검표를 명하였지만 부시는 불복해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전면적 재검표가 이뤄지면 고어가 당선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전면적 재검표는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결해 부시의 당선을 선언했다. 재검표 결과에 따라 고어가 당선될 수 있는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은 이를 부정하고 부시를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어의 태도이다. 고어는 곧바로 “국민의 단합과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저는 패배를 인정한다”며 "저를 지지했던 분들도 새 대통령을 인정하고 지지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밝히며 판결에 깨끗이 승복했다. 만일 고어가 판결에 불복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미국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져 대내외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이다.

판결이 나면 갈등은 종국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문명국가 헌법의 준엄한 명령이다. 재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갈등을 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판결은 모든 사람을 이기게 만들 수 없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는 것이 판결의 속성이다. 따라서 패자가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쟁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힘과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폭력적이고 반국가적인 헌법 파괴 행위나 다름없다.

판결은 분쟁의 종국적 해결점이면서 새로운 질서의 시작점이다. 패소한 피청구인측은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지라도, 앨 고어와 같이 판결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결과를 인정하며 새로운 질서 형성에 협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통합을 이루어 대한민국을 번영토록 하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