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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전재민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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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를 보다보면, 주인공이 악(惡)의 무리에 좇기면서 온갖 위기를 겪다 결국 ‘언론’에 사건의 전모가 공개되면서 막을 내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언론에 알려지는 순간, 숨겨져 있던 ‘악(惡)’은 척결되고 ‘선(善)’이 이길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언론공개는 곧(=) 정의구현’이라는 공식이 존재한다.

사회정의는 법조계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입시, 평가, 출·결석 등 학사행정에 있어 공정하게 해야 하고, 공무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민원을 해소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더 옳은 길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직군도 드물다.

오죽하면, 미국의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government without newspapers)'와 '정부 없는 언론(newspapers without government)'을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 즉, '정부 없는 언론'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선택하겠다고 하였을까.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사회적 분쟁과 갈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쟁과 갈등은 더더욱 복잡해지고 정교해질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과거 이념이 지배하던 시대에 비해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분쟁의 상당수는 당사자들 간 사적으로 해결되거나, 정부기관이나 법원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언론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론에 대하여 혹자는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언론을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언론이 권력화되었다며 비판적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언론이 사회적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맡아준다면, 사회적 권력은 그러한 역할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것이다.

한편, 권력은 정의롭게 행사되어야 한다. 청탁금지법에서 언론을 ‘공공기관’으로, 그 소속 임직원을 ‘공직자등’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천명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어느 영화의 엔딩씬에 나오듯 권력에는 그에 상응하는 역할과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이제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언론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짐으로써 결말을 맺는 영화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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