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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사는 만큼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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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큰 규모의 법관 인사이동이 있었다. 작년 봄부터 연잇던 법조비리에 대한 1심 재판이 일단락되고 국정농단과 탄핵심판 국면에서 법조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와중이라선지, 법정 안팎에서 내가 사는 실상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

신임 법관을 축하하면서 지금 판사의 일은 문병일지 모르니 사건으로 다가오는 마음을 더듬어 환대하기를 응원하고, 사직한 동료가 안타깝지만 헌법기관으로서 공적으로 형성된 존재이니 법정 밖에서도 먼 이웃들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축복한다.

광장을 통하여 ‘모두에 의한-모두를 위한 나라’ 민주공화국을 대의제 틀에서 벗어나 ‘시민(Demos)의 힘(Cracy) 자체’로도 보게 되자, 우리 재판부의 법정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는지, 새 헌법재판소장과 9월 임기 만료인 대법원장의 후임 선정에 어떻게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까 궁리한다. 상고법원제도의 추진과 좌절, 고등법원판사제도의 유보 및 고등법원부장판사제도의 폐지 유예, 그리고 대법원규칙만으로 소액사건의 적용범위를 3천만원까지 확대한 데 대한 논란에 접해서는 재판과 밀접한 사법행정에 법관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할 때라는 생각에 이른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나라수퍼 강도치사사건 등의 재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변호사에게 경의를 표하며, 국정농단과 탄핵심판 상황에서 들은 '법꾸라지', '법기술자', '법비(法匪)' 중 무엇이 내게 해당할까 전전긍긍하지만,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불의를 묵과하며 살았을 나를 질책할 기회다. 특히 사법의 본령이 ‘소수자·약자 보호’ 일진대, 일상에서 어떻게 공동체의 다양한 소수자·약자와 연결되어 영향받고 있는지, 심화되는 사회적·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불평등의 현실에서 아파하는 이들에게 공감하여 그로 인한 불편함으로 깨어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처지에 눈이 달리고,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 판사도 사는 만큼 재판할 수 있다. 새 임지가 낯설면 가족과 함께 이사하는 것도 좋겠다. 하루 중 몸이 가장 활발한 때 조금씩 매일 법정을 열면 어떨까. 법정을 대학 강의실처럼 가장 낮은 곳에 법대를 두어 올려다보며 재판하면 새로울지 모른다. 3월 25일 열리는 ‘국제수준의 사법부 독립 확보를 위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토론회에도 관심이 간다. 특별히 바뀐 게 없는데 생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순간은 언제 어디에나 있단다. 뭐든 딴 일을 하기만 하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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