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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71) 봉서(封書)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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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글에 봉서별감(封書別監)이란 말이 종종 보인다. 하면 봉서와 관련된 직책일 것인데 알지 못하여 쩔쩔 매다가 조선시대 궁중 일에 대해서 해박하다는 어른을 만나서 알게 된 일이 있다. 별감이란 말은 궁중에 일하는 사람만이 쓰는 직책이란 것은 알 수 있지만 봉서(封書)란 말은 쉽게 알기 어렵다. 봉서의 원뜻은 편지를 봉투에 넣고 봉투 겉면 이음새에 풀칠을 한 후 근봉(謹封)이나 봉(封)이란 글자를 쓰면서 생긴 단어인데, 어느 순간부터 임금이 일가 친척(宗親)이나 가깝게 지내는 신하에게 내리는 편지나, 왕비가 친정 식구에게 보내는 사사로운 편지라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하여간 사가(私家)와 달리 왕가(王家)에서는 특별히 쓰는 용어가 일반에서 쓰는 용어와 차이가 커서 일반인은 따로 배우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조선 후기에 오면 봉서는 거의 왕비와 관계된 한글편지일 경우만 주로 부르게 된다. 그런 덕분에 우리 한글 글씨체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계기도 되고 이로 인하여 ‘서사상궁(書寫尙宮)’이니 ‘봉서별감’이니 하는 용어가 생기기도 하였다. 왕이나 후궁이 주로 사가와 사사로이 주고받는 편지는 대부분 일상적인 안부 문안 편지이기 때문에 밑에 소속되어 있던 상궁 중에 글씨를 예쁘게 쓰는 이가 있으면 그에게 글씨를 쓰게 시키다 보니 어느 날 서사상궁이란 별명이 붙었고, 또 조선후기에 오면 왕실의 여인들이 왕비를 비롯하여 많은 한글 고소설(古小說)을 읽었기 때문에 장편(長篇)의 소설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여성 한글서예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글씨 중에 둥글둥글하고 모양이 예쁜 글씨를 우리는 궁체라 부르게 되었다. 이들이 우리 한글 글씨의 품격을 한층 올려놓게 된다. 또 이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을 통칭 봉서별감이라 부른 것이다. 어떻든 여기 소개하는 봉서는 정확히 어느 왕비의 편지인지 아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가지고 계신 분의 말을 빌리면 양주조씨(楊州趙氏) 댁에서 전해오는 봉서라 한다. 궁체의 아름다움이나 조형적, 어학적으로 볼 때 아마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것으로 여겨진다. 두통의 편지로 꾸며졌는데 한통은 사가인 판서(判書) 댁에서 궁중의 안부를 두루 묻는 내용이고, 다른 한통은 동궁과 공주들 모두 편안하다는 대왕대비의 답장인데, 바로 이런 식의 왕비편지가 바로 봉서라 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적인 안부 문안 편지가 아니고, 비밀스런 봉서일 경우에는 서사상궁만큼은 예쁘지 않지만 왕비가 직접 써서 보내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특히 고종 때 명성황후의 편지는 거의가 명성황후 자필이기 때문에 서사상궁의 글씨보다는 그 가치를 더하는 수가 있다. 이 봉서와 같이 우리 한글글씨가 18, 19세기에 오면 이렇게 길고 짧으며 강약이 있고 조형성이 매우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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