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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학대의 기준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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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애가 죽은 것도 아니고,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닌데, 학대라니요!”

“고작 뺨 한 대를 가지고 학대라고 하면, 애를 도대체 어떻게 가르치라는 말입니까!”


학대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인지, 아동보호법정에 선 행위자들 대부분은 격한 불만을 토로한다. 아동복지시설에 피해아동을 보호 위탁이라도 한 경우엔, 국가가 아이를 납치했다며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법률상 용어인 ‘행위자’라는 표현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훈육이 목적이었을 뿐, 절대 학대는 아니라 강조한다.


얼마 전 뉴스에,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먹던 음식을 뱉었다는 이유로 아이의 뺨을 때리는 CCTV 영상이 방영되었다. 모두가 분개했다. 어느 누구도 학대가 아니라 말하지 않았다. ‘고작 뺨 한 대’라 말하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결국 그 어린이집 교사는 형사 재판을 받았다.


어린이집에서 아픔을 겪은 아이는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 엄마, 아빠의 품에 안겨 위로받을 수 있고, 어린이집을 옮길 수도 있다. 


부모로부터 아픔을 겪은 아이는 갈 곳이 없다. 위로받을 수도, 집을 떠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사회가 부모에게 적용하는 학대의 기준은, 어린이집 교사에게 적용하는 학대의 기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하다.


수년전 만들어졌다는 아동학대 방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만취하여 아이를 이유 없이 심하게 폭행하거나, 배고픔에 지친 아이가 썩은 음식을 탐하는 사례를 보여주면서, 아동학대는 아이에게 상처가 되니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말하고 있었다.
보호재판에서 만난 부모들이 생각하는 ‘학대’란 그런 것인 모양이다.


아동학대 관련 특례법이 제정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학대의 기준이 정립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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