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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사법부 수난 시대

윤배경 변호사 (법무법인 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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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뒤엎고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날드 트럼프(Donald Trump)는 취임 직후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자신의 공약을 밀어부쳤다. 야심찬 첫 번째 작품은 2017년 1월 27일 서명된 주요 무슬림 7개 국가의 이민과 여행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이었다. 취임 1주일 만의 일이었다. 충격은 컸다. 순식간에 미국 전역의 국제 공항은 무슬림국적의 입국자들과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 친척 그리고 친구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공항 안팎은 트럼프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데모로 온종일 시끄러웠다. ‘이제 미국은 어디로 가고, 전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전세계 국가와 사람들도 이를 근심스런 눈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안도의 소식은 미국 사법부에서 나왔다. 

 

트럼프 행정명령이 발효된 지 1주일 만에 시에틀의 연방지방법원 판사인 제임스 로바트(James L.Robart)가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일격을 당한 트럼프는 그 다음날 자신의 트위터에 “소위 판사라는 자(so-called judge)”라고 운운하면서 그의 결정을 “터무니없다(ridiculous)”고 비난했다. 

 

영어권에서 ‘so-called’라고 하면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자격도 없는 사람이 판사 행세를 한다는 뉘앙스였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일부 보수층은 로바트 판사가 지난해 재판 과정에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고 발언한 사실을 거론하며 그를 운동권(activist)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03년 미국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하여 지명된 공화당 주류 인맥이다. 실제로 그는 철저한 보수주의자였던 셈이다. 최근 판사나 재판관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후 그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인 코스가 되었다. 

 

지난 1월 특검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실질심사를 앞두고 영장담당 판사에 대한 정치적 성향 분석이 언론과 인터넷에 난무했다. 영장이 기각되자 일부는 ‘그럴 줄 알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담당 판사가 밤을 세워 고민하고 작성하였을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 관한 내용은 애써 무시하거나, 이마저도 예외적이라고 비난했다. 담당 판사의 ‘신상’은 온전히 털려 버린 상태였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심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에서도 재판관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피청구인측 대리인단에 소속된 일부 대리인들의 돌출 발언이 문제되고 있다. 탄핵 심판 절차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공개적으로 재판부의 재판 진행이 ‘편파적’이라고 몰아 세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심 재판관은“국회의 대변인이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탄핵 심판이라는 엄중한 사건을 다루는 탄핵재판소가 정교한 법리와 정치한 논리의 장이 아니라, 생경한 정치적 선동으로 얼룩진 난장의 판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대리인을 자제시키고 설득하느라 긴 시간을 할애해야 했건만,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도 생겼다. 

 

절치부심, 보강수사 끝에 재계 1순위의 젊은 후계자를 구속시킨 특검관계자들의 신변도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극심한 국정 혼란기다. 정치가 중요하고, 정치적 의사와 표현도 중요하지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실을 밝히고, 헌법과 법을 선언하는 국가의 사법적 절차와 판단을 존중하는 것도 소중하다. "사법부는 중요하다(Court ma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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