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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맥락(脈絡: Context)

김민조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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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슈퍼볼의 시청률은 약 48%, 시청자는 1억1130여 만명, 결승전 중간에 방송되는 광고단가는 초당 2억원을 갱신했다고 한다. 명실공히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최고봉답다. 그런 슈퍼볼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리그전 TV 시청률은 내리막길이어서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들이 제법 이어졌는데, 그 중 아틀랜틱지의 분석이 흥미롭다. 이 기사는 전년 대비 최대 20%까지 떨어진 TV 시청률 저하의 원인을 ‘슈퍼스타’의 부재와 매체의 ‘원자화(atomization)’에서 찾았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국정농단 청문회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슈퍼스타 : 이번 청문회는 장르를 불문한 슈퍼스타의 향연이었다. 대기업 총수, 청와대 전 비서실장부터 유명사립대 학장, 고영태씨까지 전국민의 이목을 사로잡는 인사들이 전면에 대거 등장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처럼 화려한 공개 청문회가 있었던가.

매체의 원자화 : 청문회의 주요 순간들은 생방송과 거의 동시에 1분 남짓 동영상으로 잘게 잘려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SNS를 타고 전방위로 흘러갔다. 청문회의 처음부터 끝을 정색하고 지켜볼 시간도 여력도 별로 없다. 대신, 조금만 기다리면 하이라이트로 편집된 동영상, 실시간에 가까운 논평과 그나마도 앞뒤 잘려진 멘트, 자극적 자막이 뒤를 잇는다. 그에 즉각적으로 달리는 수백개의 댓글과 좋아요는 덤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시시각각으로 뜨는 사건사고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이 돈이라 배웠으니, 엄청나게 경제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스템 속에서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열사가 되고, 누군가는 회복이 불가하게 처참히 쓰러진다. 박수 받던 어제의 열사가 오늘 머리 숙이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들인데, 이처럼 즉각적인 전달과 반응체제가 실은 매우 공포스럽다.

영국의 마이클 무어라 불리우는 마케팅 전문가 조나단 가베이는 ‘마케팅의 교묘한 심리학’이라는 책을 통해, 영혼을 홀리는 28가지 방법을 나열하면서 그 중의 하나로 맥락의 제거(contextomy)를 들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프로그램을 편집할 때 종종 누군가의 말을 그 주체가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붙이고 자른다. 정치인의 경우 그 기법은 여론을 조작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이는데, 심지어 대개의 사람들이 정확하다고 알고 있는 사실도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경고한다. 책의 원제목은 ‘soul traders’, 내 영혼을 의도적으로 제거된 맥락 하에서 잃고 싶지는 않은 대목이다. 심지어 의도조차 알 길 없는 폭주 속에서라면 더욱.

'교제하던 미성년자, 부모 반대로 동반자살', '불륜 유부녀, 비참한 최후' 눈을 현혹하는 한 줄의 헤드라인과 이어지는 몇 줄 문장만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떻게 사랑에 빠져 목숨을 내걸게 되었는지, 안나 카레리나가 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졌는지에 대한 기나긴 서사와 맥락을 설명할 수 없다. 세익스피어와 톨스토이 역시 '그럴바에야 차라리 모른 채 지나가 주십시오' 하지 않았을까.

시간을 들여서라도 코끼리의 다리를 넘어 전체를 알고자 하는 이들과, 사명감을 가지고 그것을 알리려는 프로페셔널, 그 과정에서 훈련되는 가치판단의 공간이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공간이 언론이든, 법정이든, 개인적인 만남이든. 당신을 기꺼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