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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뮤지컬 '아이다'를 보고

이윤정 교수 (강원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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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분위기가 살짝 들뜬 어느 저녁, 잠실 샤롯데극장을 찾았다. 뮤지컬, ‘아이다’. 베르디의 오페라로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적국인과의 사랑,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흔하다. 그리고 나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은 빨리 빨리 포기하고 각자 갈 길을 가야 한다고 믿는 40대이다. 누비아 공주인 아이다가 사랑 때문에 자기 백성들을 버릴까봐 불안하고, 다 잃어도 좋다는 라다메스의 맹목적인 사랑은 너무 무모해 보인다. ‘쯧쯧,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래’ 라고 아는 체한다. 그런데 계속 볼수록 안타깝다, 두 사람이. 아이다는 누비아 왕인 아버지를 탈출시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라다메스에게 암네리스와 결혼하라고 말하고, 라다메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분을 숨겼던 아이다를 누비아로 살려 보내기 위해 부친과 싸운다. 결국 잡힌 두 사람은 차가운 사막의 돌무덤 속에서 어둠과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고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 아무리 흔하다 해도 역경을 뛰어 넘고도 변치 않는 사랑은 언제나 감동적인 것이다. 아이다가 스파르타쿠스도 아닌데, 누비아노예대탈출극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뭐가 아쉬울까. 에스메랄다를 배신한 ‘노트르담 드 파리’의 페뷔스나 ‘바야데르’의 솔로르와 확연히 비교되는 라다메스의 숭고한 사랑을 보면서 어떻게 남자의 사랑의 맹세는 가볍다 하겠는가. 사랑이야기는 흔하고 그래서 식상하다는 이 시대에 오히려 역경에 굴하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는 신선하다. 

 

어린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눈물 살짝 훔치는 것 말고도 뮤지컬 아이다는 노래, 춤, 무대가 모두 만족스러운 뮤지컬이다. 한마디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뮤지컬이랄까. 

 

노래들은 한 곡 한 곡 모두 버릴 것 없이 훌륭한데 장르도 다양하다. ‘My Strongest Suit’으로 신나는 팝을 즐기고 나면, 마치 난타 공연을 보는 듯한 ‘Dance of the Robe’가 있고, 'The gods love Nubia'는 성가대복을 입고 따라 불러야 할 것 같으며, 살짝 민망하지만 격정적 사랑을 노래하는 ‘Elaborate Lives’는 애절한 락발라드다. 

 

병사들과 궁중 여인들, 누비아 사람들의 독특한 의상과 화려한 춤을 보면 여기가 고대인지 현대인지 아니면 미래인지 알 수가 없다. 활을 쏘고, 돛을 올리던 고대 이집트 병사들이 무대 뒤로 퇴장하고 난 뒤의 장면에서는 이집트 궁전 여인들이 새틴 드레스에 고데기로 컬을 힘껏 살린 헤어스타일을 하고, 뤽베송 감독의 1997년영화 ‘제5원소’에서 봤을 것 같은 괴상한 드레스들로 패션쇼를 한다. 화려함에 절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특히 강렬한 색과 조명으로 변하는 무대는 별 장치가 없는 것 같은데도 인상이 깊다. 타는 듯 붉은 석양에 데칼코마니처럼 야자수가 강에 비치는 나일강가는 지금도 눈에 아른아른하다. 이집트나 아프리카에는 가 본 적도 없지만 내가 바로 그 나일강가에 서 있는 듯 하고, 사막을 본 적이 없지만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은 내가 아는 바로 그 사막의 밤하늘 맞다. 


오래 사랑 받는 뮤지컬은 다 이유가 있지. 손이 뜨거워질 정도로 박수를 치고, 감동과 여운을 아쉬운 한숨으로 아랫배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극장 밖으로 나오니 찬 바람이 훅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퇴근시간을 훌쩍 지난 늦은 시간에 예고도 없이 내린 비가 검은 도로를 적셔 놨다. 네온사인과 자동차들의 후미등 불빛이 바닥의 물기에 흔들리는 것을 콩콩 피해 걸으며 생각했다. 종연하는 3월 전에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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