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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70) 이재시축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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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평생지기는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 1783-1859)이다. 권돈인은 문과출신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로, 시를 잘하였고 특히 글씨에 뛰어났다. 그는 구양순(歐陽詢)풍의 글씨를 본받아 어떤 글씨는 추사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는 일생 동안 교유한 결과일 것이다. 추사의 문집을 보면 편지 왕래도 제일 많았고 글씨, 그림, 시평 등 다방면에 대해 동지 이상의 신교(神交)였다. 하지만 문집이 전하질 않아 권돈인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 자세치 않은 부분이 많다. 이 이재시축(彛齋詩軸)은 1857년 초 여름, 즉 추사가 돌아가신 지 6개월 후쯤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권돈인이 추사의 제자 희원 이한철(希園 李漢喆)이 그린 대례복을 입은 추사의 영정를 예산 향저 재실(齋室)인 추사영실(秋史影室)에 봉안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며 추사를 생각하는 감회를 이기지 못하여 쓴 여덟 수의 시와 그 외 열한 수, 합하여 열아홉 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친필원고 초본으로 앞의 8수는 두 사람의 뜨거운 우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약 5미터나 되는 긴 시축으로 군데군데 고친 부분이 있고 주(注)가 많이 붙어 있어 두 사람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이 글씨를 자세히 보면 추사와 이재의 행서가 비슷한 것 같지만 어떻게 다른지를 조금 알게 된다. 이재는 용두사미 식의 글씨를 쓰기 때문에 시작할 때의 획, 즉 기필(起筆)은 무게감도 있고 힘찬 느낌이 들지만 끝으로 갈수록 즉 수필(收筆)에 있어서는 역삼각형 모양이 되면서 획이 가늘어 져서, 작은 글씨는 그런대로 모양이 나지만 큰 글씨는 추사와 확연히 구별된다. 또 해서나 행서를 쓸 때 세로로 내려 긋는 획은 추사는 쭉 휘지 않고 칼끝이 내려가듯 내려 긋는데 이재는 항상 떨면서 내려 긋는다. 이를 가지고 해행(楷行)은 금방 구별 지으나 예서는 조형성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이 시축은 추사연구가들 사이에는 알려져 있던 작품이었지만 그동안 종적이 묘연하였는데 얼마 전 한 경매에 나왔다. 이 시축엔 얼마 전 돌아가신 서예 감정에 권위자였던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선생의 ‘청명심정 금석서화(靑溟審定 金石書畵)’의 감정인이 찍혀있어 더욱 그 가치가 인정되는 작품이다.

이 시축에 실린 작품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추사진상찬(秋史眞像贊) 뒤에 부침(1수) / 2. 추사궤연에 곡하고 돌아가며(7수) / 3. 나비를 두고(1수) / 4. 뜰 앞 철쭉을 보고(1수) / 5. 어떤이의 시집을 보고(7수) / 6. 친구들과 중양절 시회에서(1수) / 7. 생질 김후경(金厚卿)이 고향에 돌아가기에(1수)

그 중 한 수를 보면
조용히 그대 생각하며 불러본들 어이 하리 / 경당(經堂), 화실(畵室)은 옛적에 배회하며 노닐던 곳 / 천년 만년토록 끝없이 이어지는 일은 / 모두 한 찰나의 꿈인 것을. (‘추사궤연에 곡하고 돌아가며’ 중)

이 시축을 보면서 앞으로 이재의 시문집이 새로이 발견되어 이재와 추사 두 사람의 인간적 학문적으로 아름답게 펼쳐졌던 예단(藝壇)의 미사(美事)가 더 들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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