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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역사의 반동 그리고 전진

윤배경 변호사 (법무법인 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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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의 연말,‘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란 영화가 한국을 찾았다. 반대편에 표를 던졌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허탈감을 달랬다. 왕정에 반기를 들던 학생들과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가장 유명한 것이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관이다. 그에 따르면 각 사건은 필연적인 과정을 따르는데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표현한다고 한다. 하나의 사건(명제)은 그 반대의 위상(반명제)에 의하여 대체되며 결국에는 양 극단이 통합되는 위상(종합)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굴러간다는 것이다. 관념적으로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역사가 발전한다는 희망을 준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역사의 구성원 개개인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미들이 하루 하루 등락하는 주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다가 쪽박차는 것과 흡사하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을 보자. 절대 왕정에 반기를 든 시민들은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을 뒤엎었다. 그러나 혁명정부는 반동세력의 위협 속에서 극단적인 공포정치를 자행하다 다시 왕정으로 복귀되었다. 프랑스가 왕정을 폐지하고 1870년 명실공히 공화국이 되기까지 100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프랑스는 7월 혁명, 6월 항쟁, 2월 혁명 등 수많은 정치적 격변을 거쳤고, 일반 서민들이 겪었어야 할 고초는 필설로 다하기 어려웠다. 레미제라블도 1832년 6월 항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지난 해 우리는 극단적인 현상을 목격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민자를 폄하하고, 자유무역주의를 혐오하며 여성들을 우습게 여기는 기행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은 4년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그를 뽑았다. 버락 오바마의 신화가 정반대의 위상에 부딪친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도 의외였다.

 

단일 통화를 통한 경제 공동체 구성, 노동·환경·이민 정책 등을 동일화하려는 정치적 시도 등 유럽의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국은 자국의 주권을 지키겠다며 유럽연합(EU) 탈퇴를 선언했다. 향후 인류가 단일한 세계정부 아래에 통합될 것이라고 역설한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의 예상에 따르면 이 역시 역사적 반동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혼란스럽다. 6월 항쟁으로 이룩되었다고 믿어 왔던 민주화가 퇴행을 거듭해 오다가 껍데기만 남은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결국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광장에 모였다. 30년 헌정질서를 바꾸려는 동력이 강력하다. 이 동력으로 뒷걸음질쳐왔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