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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다시, 새해

김민조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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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새해 선물로 위인전집을 받았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책장 한 켠에 높이가 같은 사십 여권의 책이 일렬로 진열되던 뿌듯함. 동화가 아니라 이것은 실화라는 개념이 주는 막연한 설레임. ‘파블로’ ‘나이팅게일 ’신기한 이름부터 먼저 꺼내어 본 후, 특별히 마음에 드는 위인의 이야기는 몇 번이고 거듭 읽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장 속 위인들보다 더욱,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주는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훌륭한’이라는 형용사 하나로는 표현이 역시 부족하지만, 어찌됐든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 각자의 면모, 관계의 맥락과 깊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사람을 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포인트일 수도 있겠다.

첫째, 그들은 즐겨 웃는다. 그리고 대체로 유머러스하다.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혹은 수줍음을 잘 타는가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웃음은 그만의 고유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고 상대를 순간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데, 이는 거래가 필요한 비즈니스에서도 유효한 덕목이다. 자연은 한번도 예술을 동경한 바 없다 하니, 화사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은 그 자체로 모든 인위적인 것을 압도한다. 편안하고, 아름답다.

둘째, 그들은 눈치를 잘 본다. 눈치를 본다 하면 왠지 굴절되거나 비겁한 무언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실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일컬어지는 배려, 친절, 겸손, 양보, 그 모든 애티튜드의 처음과 끝은 결국 눈치에 달려있다. 일 처리의 시작과 마무리도 눈치다. 상대의 사정과 기대를 가늠하고, 딱 그만큼만 또는 그보다 조금만 더 부응하는 것. 타인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고 가장 온화한 방식으로 다가가는 힘, 그 기저에는 눈치가 있다. 눈치는 당신을 향한 나의 수고다.

셋째, 그들은 흔쾌히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 말에 특히 마음이 놓인다는 건, ‘그럴 수는 없어’라고 비난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를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은 시혜적인 용서보다 다정한 이해와 응원을 포함한다. 그 말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그들이 ‘그럴 수 없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을 한계점을 진지하게 헤아려 보곤 한다. 그들의 마지노선에는 타협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도약하게 하는 한마디, ‘그래, 그럴 수 있어.’

새해 들어 주요 변호사단체의 장이 바뀐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도 교체가 예정되어 있다. 대통령 선거도 연내다. 그 자격요건, 선출이나 임명의 절차는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이제는 사양길이라는 법조계의 어느 자격들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선명하다. 그러나 끝까지 살아남아 스타일과 품격을 가르는 것은 그 너머다.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깊이와 됨됨이다.“여러분은 저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You made me a better president, and you made me a better man).” 오바마의 고별 연설은 그런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다시, 새해다. 새해에는 자주 웃고 싶다. 사방팔방 눈치 제대로 살피며, 너그럽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지나치게 어둡고, 꽉 막히고, 분노 가득한 세상에서 그런 따뜻함의 겹이 구원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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