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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법조산책

14. 캘리포니아 와인법

박영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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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90%는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어진다. 만일 국가로 치자면, 캘리포니아는 전세계에서 4번째로 큰 와인생산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중부에는 나파 밸리와 소노마 밸리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와이너리도 있지만, 내가 사는 로스엔젤레스 인근에서도 한두시간만 운전을 하고 나가면 싸고 질좋은 와인을 시음할수 있는 와이너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유학초기 이스라엘에서 온 친구와 차를 빌려 나파 밸리에 와인투어를 갔던 추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와이너리들이 와인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도록 했다. 몇 군데의 와이너리를 들러 딱 한잔씩만 맛을 본다고 하다가 취기가 올라 한참 쉬다가 겨우 집으로 온 기억이 난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이제는 무료 시음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와이너리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시음용 와인을 팔거나, 점심과 와인투어를 패키지 상품으로 내걸고 호객행위를 한다.

그리고 매년 11월경 로스엔젤레스의 북쪽 산타 바바라 근처에선 캘리포니아에서 이름 높은 와인법 변호사들이 모여 학술세미나를 갖기도 한다.와인에 관련된 법은 중세시대부터 있었다. 와인 맛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소금을 한 수저씩 넣어 꼼수를 부리는 와인제조업자들이 생기자, 서기1년경 로마에선 와인에 소금을 1그램 이상 넣는 와인제조업자를 형사처벌까지 했다고 한다. 근대 미국의 와인법은 와인이 원산지에서 소비자에게 닿을 때까지 생길 수 있는 모든 법률문제를 다루는 광범위한 법분야이다. 예를 들면, 와인이라는 레벨을 달기 위해선 내용물의 순도가 어떠해야 하며, 어떤 종류의 와인으로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판가름하는 와인 상표법부터 시작하여, 비정규직 직원이 많은 와인산업에서 와인너리 주인들이 지켜야할 근로계약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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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와인판매법은 와인법 중 핫이슈로 여겨진다. 미국의 와인판매 및 유통법을 논하려면, 1920년 제정된 미국수정헌법 제 18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명 ‘금주법’으로 알려진 이 수정헌법은 술 마시는 것을 종교적인 죄악으로 간주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러나 금주법으로 인해 오히려 술을 음성적으로 사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조직적으로 술 시장을 장악하려는 조직폭력배들 간의 알력다툼을 낳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명한 조직폭력배인 알카폰이다. 그래서 1930년경 미국에선 금주법을 폐지하는 수정헌법 제 21조가 통과되었다. 금주법을 없애는 외에도 연방법인 수정헌법 21조는 각각의 주정부가 주 경계선내에서 술유통에 대한 법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자치권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주류유통 및 판매법은 대개의 경우 주정부에서 만들고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1970년 전까지 미국의 상류층에선 저녁이 되면 마티니 한잔씩을 만들어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는 고급 와인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었다. 이런 유행이 시작되자,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들은 앞을 다투어 좀 더 고급스럽고 깊이 있는 맛, 그러면서도 너무 젠체하지 않으며 부담 없이 소비자가 다가갈 수 있는 와인을 생산하는데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급 불란서 와인만을 고집하던 캘리포니아의 소비자들이 점차 로컬 와인으로 소비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터넷이 합세하자, 원산지인 와이너리에서 소비자에게 와인의 직접 판매가 가능해졌으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법률문제도 발생했다.

와인은 술에 속하므로 캘리포니아의 주정부에서 발급하는 주류판매 면허증이 없으면 팔 수가 없다.

저명한 와인잡지들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잡지에서 소개한 와인을 와이너리들과 손잡고 팔기 시작했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가 합세해 인터넷상으로 와인클럽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게 되면서, 유명 블로거들은 시장에 나온 새 와인을 마셔보고 리뷰를 쓰고 와이너리로 부터 커미션을 받아 가며 와인을 팔기 시작했다. 마치 와이너리의 에이전트처럼 인터넷상에서 와인을 사고팔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비록 면허증이 없더라도, 와인을 공급하는 와이너리의 주류판매 면허증으로 인터넷상 상거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이런 종류의 와인거래를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Type 85’라고 하는 인터넷 판매를 위한 주류면허증을 따로 발급하고 있다.

술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빚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캘리포니아의 와인법은 이렇게 법과 비즈니스, 그리고 술을 빚는 장인정신이 합쳐져 만들어진 총체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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