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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탄원서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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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을 담당하던 어느 해 일이다. 변론을 마치고 판결선고를 앞둔 사건의 피해자가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6건의 사기 사건을 병합하여 진행하였는데 불구속 상태에서 1년여 동안 공판에 출석하던 피고인이 선고기일에 도주하였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기일에 출석하고, 피고인이 도주한 후에도 기일마다 법정에 나와 재판장으로서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절차에 관한 안내를 해주었기에 안면이 있었다.
탄원서 내용은 판사가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판결선고를 미룬다는 것이었다.
당시 피고인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지명수배를 의뢰한 단계였고 소촉법상 요건은 갖추기 전이었으므로 법적으로 피고인의 출석 없이 판결을 선고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충격과 함께 서운함이 밀려왔다. 오매불망 판결선고를 기다리는 피해자의 입장은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불신은 상상하지 못했다.

 재판 중 발부한 구속영장 역시 검사의 지휘로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한다. 그런데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재판 도중 도주한 피고인에 대한 영장 집행이 너무 더디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출석 없이 개정할 수 없다. 영장 집행이 늦어지는 사이 피해자의 시름은 깊어가고 종종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피해자가 나서서 피고인의 소재를 파악하여 제보하기도 하지만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형사재판장 사이에서는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선고되어 확정된 피고인에 대한 형 집행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과 비교하여 재판 중인 피고인에 대한 영장 집행이 너무 늦다는 비판이 많다.

 사법불신의 시작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아무리 법정에서 절차에 따른 재판을 진행하고 있어도, 영장이 발부되어 있음에도 거리를 활보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는 피고인을 바라보는 피해자는 법원도 수사기관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변명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피고인의 출석을 담보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정의의 지연과 사법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하여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수사나 형 집행 단계에서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의 반만이라도 투입할 수 있다면 고의로 재판을 회피하는 피고인에 대한 영장 상당수가 조기에 집행되어 재판의 지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맘때 형사재판장의 마음은 바쁘다. 답답한 재판장의 마음과 상처받은 피해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줄 결단을 기대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