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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새해에 꾸는 꿈

이인석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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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에는 1930년대부터 이매지니어(Imagine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하다’와 ‘엔지니어’를 합친 이 단어는 ‘상상하고 실천하는 사람(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사람)’을 뜻한다. 월트 디즈니는 생전에 순진한 아이처럼 “파란 코끼리를 꿈꾸라”고 외쳤다. 꿈을 꿀 수 있으면 실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새해에는 ‘사법독립’과 ‘사법신뢰 향상’처럼 늘 바라지만 아직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은 파란 코끼리를 함께 꿈꿔보면 어떨까.

사법독립은 중요하지만 누구에게도 확실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영역이다. 정작 자신이 관여된 재판에서는 권력을 이용해 판사를 압박하거나 전관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즉 ‘불공정한 재판’을 받고 싶어 한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민단체를 사주해 판사에 대한 악성 댓글을 달게 하거나, 집 앞에서 시위를 하게 하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의 뒷조사를 하는 일 등이 언론에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새해에는 사법독립이 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길 기대한다. 정치적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갖고와 판사들을 좌파니 우파니 이름 붙이는 행동은 멈춰야 한다. 제도적인 면에서도 선진 각국과 같이 사법부의 예산제출권을 인정하는 등 예산편성에서 자율성을 보장하고, 사법절차 관련 법안에서 법원의 의견이 존중되는 관행이 공고히 되길 바란다. 아울러 사법부 인사에서도 외부의 부당한 영향력이 작용할 여지를 없애고, 정당한 시민사회의 의견이 투명하게 반영되는 시스템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사법신뢰는 늘 꿈꾸지만 달성하기 힘든 원초적 한계가 있다. 법정은 아름다운 진실 발견의 장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실질은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전쟁터에 가깝다.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우리 편에 파울을 불면 누구나 심판의 잘못된 점을 찾기에 바빠진다. 반면 상대편에 대해 파울을 선언하면 심판의 잘못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경우에도 그냥 넘어가려 한다. 이를 의도적 합리화(Motivated reasoning)라고 하는데 결국 재판에서 진 사람이 패소판결을 한 판사를 신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법원은 늘 사법신뢰를 꿈꾼다. 당사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당사자가 자신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어도 행간에 숨은 억울한 점이 없는지를 찾는다. 패소자한테 불공정하다는 말을 들을 때 듣더라도 그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해주고, 주장하는 바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사법신뢰는 지금까지의 법원과 같이 많은 사건을 빨리, 밤새워 처리하는 방식으로는 달성하기 힘들다. 오히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신의 능력의 60% 정도만 일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맑은 머리로 공상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경우 가장 합리적인 일처리를 한다고 한다. 사법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빠른 일처리를 위해 늘 지쳐있는 판사가 아니라 여백이 있어 항상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판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승자가 될 수 없는 소송에서 패소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법불신이 쌓여 언젠간 감당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새해에는 사법신뢰를 위해 야근이나 주말근무와 조금 더 멀어지는 법원의 모습을 꿈꿔본다.

 “누구든 상상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다. 그리고 꿈꿀 수 있다면 실행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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