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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69) 추사의 예서(隸書)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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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에 있어서 글자의 시작은 상형문자(象形文字)다. 다르게 도상문자(圖像文字)라고도 한다. 그래서 표의문자가 되었고 일단 그 모양을 보면 그 글자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이 상형문자가 전서(篆書)라는 글씨체의 모체가 되기도 했지만 갑골문자(甲骨文字)의 모체이기도 하다. 상(商)나라(殷나라라고도 부른다)에서 상용되던 갑골문자는 상나라가 망하면서 문자도 같이 살아졌다가 19세기 말에 세상에 다시 나타났고, 상나라 다음인 주(周)나라에서는 전서가 상용되었다.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였을 때도 전서를 사용했지만 한(漢)나라가 다시 천하를 통일하면서는 또다시 전서에서 예서(隸書)라는 글씨체로 변해갔다. 이 예서의 글씨부터 급속도로 글씨의 모양이 변형되어 글씨가 단순히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에서 멋이라는 예술로서의 비상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중국 청(淸)나라에 들어오면 청나라의 새로운 철학사조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고증학(考證學)이라 부른다. 이 고증학은 그 이전의 모든 학문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바탕, 즉 실지의 일에서 옮음을 찾는 것으로 시작해 이전에 나왔던 모든 서적의 공리공론(空理空論)적 사고를 부정하면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얻은 지식만을 취하는 자세로 임했다.

  이런 고증학적 목적에 청동기(靑銅器) 유물의 글씨나 비석 등에 새겼던 글씨가 엄청난 도움을 줬다. 이를 금석학이라 불렀는데, 이는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적용되었다. 특히 글씨연구에 있어서는 한나라 때의 비석이나 청동기에 씌여진 글이 내용면과 글씨의 조형성이 철학, 역사, 예술에 절대적인 영향을 줬다. 청나라 후기 등완백(鄧完伯), 김농(金農), 정판교(鄭板橋), 이병수(李秉綬), 하소기(何紹基) 등 무수한 서예가 들이 그들만의 새로운 글씨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을 때, 이들이 가장 많이 노력을 기울여 연구하고 임모(臨模)한 것이 거의 한나라 비석 아니면 동경(銅鏡 : 구리 거울), 와당(瓦當 : 기와 마구리에 새긴 글씨)에 새겨진 글씨였다. 여기에서 청나라 시기에 유행했던 동기창(董其昌)이나 문징명(文徵明) 등의 전통파 서예가의 글씨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필획과 조형성을 찾아내, 거기에 각자의 새로운 생각을 담아냈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청나라에는 그런 작가가 꽤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독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한 사람만이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추사 한 사람이 그들을 다 합친 예술세계보다 더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바로 이런 추사가 젊어서 한나라 동경과 와당 글씨를 찾아서 연구하고 나름의 새로운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사람들은 임모했다 하면 남의 작품을 그대로 갔다 쓴 것으로 착각을 하는데,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런 식으로 공부를 배워 나갔고 이 방법에서 기술적인 노하우는 마스터하게 된다. 여기에다 작가 본인 생각을 1 퍼센트라도 새롭게 들어가면 바로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 추사의 글씨는 한나라의 동경을 임모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생각을 가미하여 쓴 작품이다. 추사체의 여러 작품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동경이나 와당의 글씨가 매우 다양하기에 더 이 글씨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글씨들의 장점을 녹여서 자기의 글씨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여기 글자 중에 유심히 돋보이는 것은 바로 공(公)과 지(至)자의 대칭 획, 세 가지 모양의 관(官)자, 자(子) 손(孫) 효(孝) 숙(孰)자에 보이는 아들자(子)의 다른 형태, 필(必)자의 중심 획, 두 모습의 장(長)자 등이다. 추사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발상이다.

 長樂無極宜高官, 큰 즐거움이 끝이 없고 벼슬도 높아져야 한다.
位至三公居必安. 지위는 정승에 이르고 지낼 때는 반드시 편안하라.
多賀君家受大福, 그대 집에 큰 복 받기를 바란다.
風雨時節五穀熟. 비 바람이 제때에 와야 오곡이 잘 익는다.
君宜長官蒙祿食, 그대가 좋은 벼슬에 봉록도 많이 받기를 바란다.
子孫備具孝且力. 자손들이 두루 있어 효도하고 힘이 있기 바란다.
芋瑟侍兮天下復, 좋은 음악으로 부모를 모시면 천하를 회복한다.
多賀國家民人息. 나라와 백성이 편안히 쉬기를 크게 바란다.
官位尊顯中心驩. 벼슬과 지위가 높고 이름이 들어나면 마음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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