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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내가 쓴]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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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몰입이 방해되는 순간이 있다. 판사가 망치를 ‘땅땅땅’ 내리치는 장면이다. 이외에도 많다. 판사가 재판하다가 검사와 변호인을 법대 앞으로 불러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갑시다”라며 속삭이는 장면. 형사사건인데 ‘피고’라 부르는 장면, 판사가 무슨 궁전 같은 저택에 살고 표정도 고민도 없는 기계인간처럼 등장하는 장면.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차라리 내가 직접 무엇이 진짜인지 보여주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쓴 법정소설이 ‘미스 함무라비’다.

열혈 정의파 초임 판사인 박차오름 판사, 매사에 시니컬한 엘리트 임바른 판사, 세상의 풍파 다 겪은 현실주의자 한세상 부장판사. 이 세 명으로 구성된 합의부가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상속 분쟁, 양육권 분쟁, 주폭 사건, 교수가 제자를 준강간한 사건, 매 맞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국민참여재판 등을 재판하며 각자의 입장에 따라 치열하게 부딪히고 고민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판사들이 고민하는 지점, 때론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까지 담아보려 했다.

“취하기라도 해야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주폭 노인의 행동은 악이라기보다 나약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강인하게 버티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나약함과 강인함조차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인구의 2% 정도는 유전적 변이로 인해 뇌 속 세로토닌 조절 실패로 음주 후 폭력 성향을 나타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 그런데 무엇이 ‘원인’이지? 무엇이 ‘행위’고? 그리고 ‘자유’란 놈은 또 뭐고. 자유의지를 전제로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판사의 일이란 실은 다 허깨비짓 같은 것은 아닐까.” 임바른 판사의 독백이다.

이야기의 매듭마다 ‘판사의 일’이라는 해설 부분도 넣었다. 재판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들이 각각 어떤 일들을 하는 것인지, 법복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여성 법관의 증가가 법원에 어떤 변화를 낳고 있는지, 전관예우는 다들 “봤다” “못봤다” 영원히 다투는 네스 호의 괴물인지, 주폭 같은 범죄에 있어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은 무엇인지, 법관의 인지적 오류와 편향에도 불구하고 재판제도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목 ‘미스 함무라비’는 극중에서 네티즌들이 주인공 박차오름 판사에게 붙인 별명이다. 주인공은 성차별적 호칭이라며 싫어한다. 열혈 정의파 젊은 법관이기에 ‘함무라비’를 연상하지만, 동시에 젊은 ‘여성’이기에 무심코 ‘미스 ~’가 떠오르는 사회의 시선, 이 양가적인 의미가 주인공이 겪는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또한 ‘함무라비’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의미 역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단순한 엄벌주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야기한다. 이 역시 이 책의 주제와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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