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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68) 순장 바둑판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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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李昌鎬) 국수가 바둑으로 세계를 몇 년째 제패할 때에는 지금보다도 바둑의 인기가 몇 배나 더 있었다.
지금은 중국에 약간 밀리는 형세지만 또 어떻게 변화가 될지 알 수가 없다. 60~70년대에 일본이 득세할 때 우리가 일본을 능가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필자도 한 때 바둑에 빠져있을 때 안영이(安玲二: 1934- )선생을 만났다.

안 선생은 젊어서 바둑잡지 기자를 하기도 했지만 필자가 만났을 때는 바둑 관련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필자는 선생을 만나서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 바둑 역사에 엄청난 노력을 쏟고 연구와 자료 수집에 몰두하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때 선생을 만나면 가장 즐거웠던 일이 우리 전통바둑인 순장(巡將)바둑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순장바둑하면 그 때도 아는 사람이 드문 때였으니, 요즘 사람들이야 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때 필자는 이 바둑에 대해 주위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 등으로 조금 아는 체를 하였지만 선생은 순장바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바둑 역사에 있어서는 어떤 부분을 막론하고 막힘이 없었다.

순장바둑은 삼국 아니 바둑이 전해 내려 올 때부터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전해오는 바둑이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광복 이후부터 거의 사라져 지금은 연구자 몇몇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순장바둑이 일본식이나 중국식과 다른 점을 애기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가장 특이한 것이 화점 줄에 빙 둘러 흑백이 각각 8점과 천원(天元: 제일 중앙 가운데 점)에 흑을 놓아 도합 17점을 놓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요즈음의 포석을 먼저 해놓고 한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바둑알이 조금 적게 들고(각각 약 150개 정도) 또 바로 싸움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싸움바둑이다. 하여 포석을 처음부터 하는 일본 바둑이나 중국 바둑보다 그리 크게 이기고 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수준 차이가 좀 있다 하더라도(급수 차이가 있어도) 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를 않는다. 아마도 근대 바둑의 계가가 포석에서의 차이가 큰데 순장바둑은 포석을 미리 해 놓고 시작하니 급수에 비해 집 차이가 그리 크게 나지를 않는 것이다. 17점이나 놓고 두는 것만큼이나 더 큰 차이는 계가를 할 때 포로 즉 잡은 돌은 인정치 않고 집 수로만 계가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중국바둑과 조금 같은 점이 있다.

응창기(應昌期)배에서 하는 응씨룰과 비슷한 점은 잡은 상대편 돌은 다 돌려주는 것이고, 응씨룰은 남은 자기 돌로 자기 집을 메우고 돌이 남으면 상대방 집도 메워 계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장바둑은 상대방 돌을 다 돌려 줄 뿐 아니라 내 집에서 상대방 집의 경계선의 돌만 남기고 그 안의 모든 내 돌도 모두 들어내고 그 집이 많은 쪽이 이기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흑이 선수가 아니라 백이 선수라는 점이다. 그러나 천원(天元)에 흑을 놓기 때문에 흑선이나 다름없지만 윗사람을 존경하는 동방예의지국의 멋이 들어 있으니 얼마나 멋진 첫 점이 아닌가?

이런 멋진 우리 바둑이 존재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갈수록 없어지고 이젠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고, 여기에 소개하는 순장 바둑판만 남아서 그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 순장바둑판은 위 판은 소나무로 되었고 옆의 돌림판은 오동나무로 되어 있으며 밑에는 용수철로 된 철사가 들어 있어 바둑돌을 놓으면 아주 상쾌한 ‘퉁’ 소리가 울린다. 아마도 구한말이나 일제 초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순장 바둑판은 검은 점으로 화점이 천원 포함 17점에 찍혀 있는데, 더 고급 바둑판엔 검은 점이 아니라 매화 모양의 화점이 찍혀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