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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이제는 개헌이다

신봉기 교수 (경북대 로스쿨)

6.29선언과 국민들의 환호성을 들은 것은 독일에서였다. 전두환 퇴진과 5공헌법의 몰락도 그곳에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출범한 6공헌법 하에서 몇 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30년 세월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국민들은 또 다시 광장으로 나섰다.

기억은 충격이다. 79년 10.26 대통령 시해, 80년 5.18 광주 유혈 진압사건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고향이 광주였던 친구들은 고향에 가니 동생이 형님이 총에 맞았다며 울부짖었다. 서울에 남은 나도 서울역 광장에서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을 피해 도망가다가 숨은 어느 골목에서 최루탄 파편에 찢겨 엉킨 머리칼의 핏덩이를 떼어냈었다. 그러다가 홀연히 독일로 가버렸다. 민주화 열기는 전두환 세력의 무릎을 꿇렸다. 눈시울을 붉히며, 목숨을 걸고 쟁취했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개헌은 핏물이다. 내게 독일 생활 4년은 모욕과 3등국민이라는 시선의 극복 기간이었다. 5.18과 군부독재, 반정부 데모로 점철된 현대사를 가진 나라를 조국으로 둔 국민이었기에 말이다. TV의 88서울올림픽 특집은 반은 한국문화 소개였고 나머지는 전두환과 화염병, 광주진압 광경을 보여줬다. 한국 특집을 하고나면 며칠간은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끙끙 앓았다. 가슴이 미어터지고 독재권력에 한이 서렸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저력이 있었다. 피로써 5년단임제 개헌을 쟁취했고 광장정치의 승리를 보여줬다.

촛불은 눈물이다. 그동안 단임제의 문제점보다 개헌이라는 뇌관을 건드리는 게 더욱 불안했다. 노태우에서 이명박까지 대통령이 이어지는 동안 개헌 시도는 매번 불발에 그쳤고, 단임제 폐해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우세했다. 나도 같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몇 주 동안 1백만명의 평화적 촛불집회에 세계가 놀라고 우리도 감탄했다. 촛불도 성숙했고 그것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또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개헌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개헌 부작용의 우려를 잠재웠다. 5년단임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4년중임제든 내각제든 한탕주의식 임기말 부패를 수반하는, 대통령 독식의 권력집중을 타도하는 내용의 개헌이 시급하다. 여야청과 국민이 한목소리로 권력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것도 우리 정치사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대통령 퇴진 주장의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정치적 계산으로 개헌론을 접근해서도 안되고, 당리당략으로 우왕좌왕하는 국회에만 이를 맡겨둘 수도 없다. 더 이상 개헌 논의를 뒷전에 물려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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