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法臺에서

70만원의 무게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피고인은 30대 후반의 가정주부였다. 집에 사람이 없다면서 재판 때마다 백일이나 갓 넘겼음직한 아기를 등에 업고 법정에 나왔다. 컴퓨터 부품을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환불을 요청했는데 판매자가 거절하자 그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행위로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이 청구되었다가 무죄를 다투어 공판에 회부된 터였다. 그녀는 최후변론에서도 자신은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문 작성을 위해 기록을 검토하던 필자는 피고인이 '진술서'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뜻밖의 구절을 발견하였다. 남편이 실직한 지 오래되어 아기의 분유값조차 마련하기 힘드니, 혹시라도 자신의 행위가 죄가 된다면 벌금형 대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는 것이었다. 시종 당당한 어조로 자기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 거침없이 써내려가다가, 남들이 볼세라 슬쩍 적어 넣은 듯한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녀가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죄보다도 자신의 가난을 더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70만원의 벌금이 누구에게는 살다보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한 비용 지출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가혹한 형벌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행 벌금제도는 액수만을 정하여 선고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형벌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의 양극화가 갈수로 심화되고 형평과 정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는 지금 우리도 일수벌금제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

일수벌금제는 먼저 벌금의 일수를 정하고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여 1일 벌금액을 정하는 것이다. 혹자는 동일한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불공평하다며 반대하지만, 동일한 잘못에는 동일한 수준의 고통을 주는 것이야말로 공평의 이념에 부합한다. 피고인의 경제력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지만,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도 소득과 재산에 기초하여 납부하고 있는 마당에 정확한 경제력 파악을 위한 제도 설계는 입법 과정에서의 과제로 맡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의 불평등이 형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