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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67) 우당 시, 일중 글씨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글씨란 다른 예술품과 다르게 예술성도 따지지만 내용을 매우 중시한다. 하여 아무리 글씨가 예술성이 뛰어난다 해도 내용이 남을 욕하거나 혹은 제문(祭文) 같은 글인 경우에는 집에 걸어 두기에는 찝찝하고, 또 글씨 쓴 이가 우리 정서에 어울리지 않을 때에는 그 사람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예술성과는 무관하게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미술시장에서 다른 미술품과는 다르게 인기도 많이 떨어지고 매매도 덜 이루어진다. 훌륭한 인품까지도 요하는 글씨는 여러 가지로 미술시장에서 인기품목이 되기는 어떻든 쉽지 않다. 얼마 전 어느 경매장에서 본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의 한자 행서 작품은 글씨도 좋지만 내용이 너무 좋아 무조건 구입하게 되었다. 일제 말부터 근년까지 서예계(書藝界)에서 가장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글씨는 말할 것도 없고, 인품과 제자 육성 등 모든 면에서 어른 노릇을 제대로 했던 분의 글씨에다가 이렇게 필자가 좋아하는 한시(漢詩)까지 써 있는 작품이면 가격의 고하간에 꼭 사야만 하는 것이 글씨를 좋아하는 이의 즐거움이다.

비바람 부는 봄, 횡으로 종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게(蟹)여, 참으로 부럽구나 창자 없다니, 평생을 창자 끊어지는(斷腸) 괴로움 없을 것이니.(秋風秋雨滿汀洲, 特地縱橫任自由. 公子無腸眞可羨, 一生不識斷腸愁)

시를 보아 알겠지만 일제시대 친일(親日)한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조롱이다. 구한말 일제 초기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우당 윤희구(于堂 尹喜求: 1867-1926)의 게에 관한 시다. 어떤 이가 게(蟹)그림을 가져와서 화제(畵題)를 써 달라 하자 즉석에서 쓴 시라고 전한다. 일중의 "그 때에 일제의 기운이 하늘에 넘쳤는데 부친 뜻이 깊다(時島?漲天 寓意深焉)" 란 평이 당시의 상황을 여실히 표현했다.

우당선생은 1897년 박학사(博學士)로 발탁되어 대한예전(大韓禮典)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다시 편찬 할 때 그 일에 참여하였다가, 나라가 망하자 시와 술로 평생을 보낸 마지막 조선선비의 한 사람 이였다. 당시 현실에 깊이 뛰어 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뛰어 들자니 양심에 꺼리고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설 자리를 잃은 힘없는 지식인이 읊은 시가 바로 무장공자(無腸公子)라 불린 이런 게와 같은 시가 아닐까?

일중 선생은 한자만 이렇게 잘 썼을 뿐만 아니라 궁체를 비롯해 각체에 능한 분이었다. 특히 훈민정음(訓民正音),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의 옛 판본체(板本體)에 한자의 전서와 예서의 필법을 가미하여 한글의 새로운 체를 새롭게 개발하여 '한글 고체"라 명명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 동안 궁중에서 쓰던 궁체를 응용한 글씨만 썼던 서예계(書藝界)에 새 바람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우리 한글 글씨체가 다양화됐다. 한자도 모든 체에 두루 능했지만 한글의 다양화는 일중선생의 큰 업적이다. 한글 고체를 한자 글씨로 말하면 한글의 예서라 할 수 있다. 또 얼마나 한글 글씨체를 잘 썼는지 해방 이후에 공식적인 비석을 한글로 쓴 첫 번째 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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