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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이대 나온 여자

윤배경 변호사 (법무법인 율현)

허영만 작가의 인기 만화를 영화로 만든 '타짜'가 2006년 개봉되었다. 영화는 684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이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정 마담(김혜수 분)이 형사에 잡혀가면서 한 말이다. 이 한 마디는 관객의 귀와 뇌리에 깊이 박혔다. 순식간에 우리나라 사회에 뿌리 깊은 학벌 우월, 속물 근성 그리고 허위 의식 등을 대변하는 명대사의 반열에 올랐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 '마담 뚜'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혼을 중매하는 나이 든 여성들을 가리켰다. 중매인을 낮게 부르는 '뚜쟁이'에서 어원을 찾는다. 당시 그들은 사법연수원생, 의사, 회계사 등 이른바 '사' 자들을 부유층 자녀들과 연결시켜 주며 우리나라 결혼중매 시장을 주도했다. 마담 뚜는 각자 나름대로의 철칙이나 노하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리스트에 오른 고객은 끝까지 책임진다든가, 남녀 고객의 과거사나 사적 생활은 비밀에 부친다든가 하는 당연한 것에서부터 맞선 장소로는 어디가 좋더라 등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양했다. 당시 마담 뚜들이 기본적으로 공유했던 인식 중 하나는 '매물 시장에 나가면 여자는 이대 출신이 최고'라는 것이었다(여성을 상품화하는 표현이지만 그대로 옮겼다). 중매시장에서 인기가 좋은 까닭에 이대 졸업생들의 경우 남편의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졸업 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마담 뚜의 믿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벌가 회장 부인의 약 40%, 역대 대통령 영부인 중 3분이 이대 출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사학인 이화여자대학교와 졸업생의 위상이 그러했다.

결혼정보업체들이 빅데이터와 체계적인 회원관리로 결혼중매시장을 장악한 오늘날, 마담 뚜의 한물간 신념을 어디까지 포섭하여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딸 가진 부모들 입장에서 이화여대 졸업장은 여전히 매력적인 모양이다. 대통령의 지인이란 사람이 자기 딸을 이대에 입학시키기 위하여 주도면밀하게 움직인 정황이 밝혀지고 있다. 그 과정에 승마협회 관계자 등이 등장하는가 하면, 학교 측도 시기에 맞춰 기존에 없던 특기생 입학 요강을 만들었다. 일사분란함이 마치 기업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한 것 같다.

프로젝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입학한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는지 문제의 학생을 이대졸업생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지속되었다. 수업을 듣지 않았는데도 제적을 면하고, 엉터리 리포트를 써 내는데도 학점이 수여되었다. 그 과정에 학칙이 개정되고 소급 적용되기도 했다. 집요함이 놀랍다. 언론은 "E대가 S대가 되었다", "이대(梨大)가 마대(馬大)가 되었다"고 비아냥거렸다. 불투명한 학교 행정으로 지탄 받는 와중에도 끝까지 버티던 총장이 쫓겨나듯 물러난 배경이다. 재단 측도 진실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학교의 명예를 지키려는 이대생들의 끈기 있는 투쟁이 낳은 산물이다. 그들의 작지만 위대한 승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한번 실추된 사학명문 여대의 이미지는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대 나온 여자'라는 자존심도 같은 운명이다.
리걸에듀